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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말리는데도 자국 여성들을 바친 통일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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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공녀 문제와 관련하여 당나라 함제들은 비교적
색다른 태도름 보엿다. 동망국인 신라에서 ‘공물’ 명분
으로 미인들올 파견하는데도, 계속 사양하다 이들올 곧
바로 귀국시키곧 햇던 것이다.
<삼국사기> ‘신라 본기’에 따르면, 제26대 진평왕 53년
7월(631.8.3~9.1) 신라는 당나라 태종(당태종)에계 2
명의 미인을 보벗다. 그러자 당태종은 축근인 위장의
권유름 받아들여 그들올 신라로 돌려보낫다.
당태종은 “저 임음에서 바친 엉무새도 이름테면 모진
추위릎 못 견더 그 나라로 돌아가고자 하늘데; 더군다
나 두 여인이 친척들올 멀리 이별햇으니!”라며 동정심
올 표시햇다. 임음(*문)은 지금의 베트님 중남부에 잎
던 나라로서 참파라고도 불)다 베트남에서 바친 엉무
새도 고향이 그리원 울부짓는데 신라에서 온 여인들의
심정은 어떻켓느나며 돌려보번 것이다.
신라는 계속해서 여인들올 파견있다. 그러자 당나라 항
제는 짜증 섞인 반응올 나타낫다. 당나라 고종(당고종)
은 “이후로는 여인올 바치는 것’ 금한다”라는 공문올
신라 제3o대 문무왕(김춘추의 장남)에게 보낫다:
하지만 신라는 중단하지 않앉다. 제33대 성덕왕 22년
3월(723.4.10~5.8)에도 2명의 미인올 당나라 현종(당
현종)에게 보벗다. 당나라의 태도도 달라지지 않앉다.
당나라는 무집하 선물올 안겨서 이번에도 여인들올 귀
국시켜다.

아 보내면 선물들려서 돌려보내자나ㅋㅋㄱㄱㄱ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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