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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18살 시절 업적” 정체 확인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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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생전 할머니께서는 우리를 만나면,
(2)늘 입버릇처럼 “너희 할아버지가 18살에
(3)큰 일을 한 사람이다.”라고 말하곤 하셨다.
(4)제대년월일
(5)입대년월일
(6)화랑무공훈장
(7)기타 참전 전투
(8)훈장받은 전투
(9)① 1952 서부지구 전투에 ① 인천상륙작전
(10)② 연희고지 전투
(11)③ 원산상륙 전투
(12)④ 화천 전투
(13)⑤ 양덕 전투
(14)⑥ 도솔산 전투
(15)8사단 15사단
(16)북한의 점령지역1사단문화 6사단
(17)3사단 포
(18)10사단 북경산 수도사단
(19)2사단 1기병사단
(20)대한민국 산
(21)2사단이
(22)북
(23)북 25사단 7
(24)북한군 최대 남침선(1950년 9월 초)
(25)1950년 8월 5일 낙동강 방어선
(26)1950년 8월 5일
(27)18세, 해병대 3기, 해병대 제1연대 1대대 배속
(28)인천 만석동에 상륙하는
(29)한국 해병대
(30)[1] 인천상륙작전 (1950년 9월)
(31)104고지 탈환 후
(32)서울시내를 바라보는 해병대
(33)[2] 연희고지(연희 104고지) 전투 (1950년 9월)
(34)수도 서울 탈환을 위한 조선인민군 최후의 보루 연희고지
(35)(104고지)를 탈환하기 위한 전투.
(36)방어에 필사적이었던 조선인민군과 개활지를 돌파하며 고
(37)지를 점령해야 하는 대한민국 해병대
(38)양측은 물러설 퇴로가 없는 상황이었으며 2일 간 백병전까
(39)지 이어지는 엄청난 격전이 벌어졌다.
(40)서울 탈환을 위한 마지막 관문을 돌파하는 임무를 맡은 대
(41)한민국 해병대 제1연대는
(42)1대대가 앞장서서 필사의 공세로 개활지를 돌파하며 기관총 진지를 무력화하며 고지를 점령하고
(43)전투에 승리하였다. 전투의 선봉에 섰던 1대대는 병력 대
(44)부분을 잃었다.
(45)조선인민군 방어병력 1,750명 전원 사살 / 해병대 제1연
(46)대 1대대 생존병력 26명
(47)[3] 원산상륙작전 (1950년 10월)
(48)[4] 화천전투(1951년 4월~5월)
(49)51년 4월~51년 5월까지의 중국인민지원군 춘계공세에국군과 미군이 맞선 전투 사창리 전투에서 중국인민지원군에게 국군 제6사단이 돌파당하여 포위당한 미 해병대 제
(50)5연대와 대한민국 해병대 제1연대, 해병 제1연대는 중국인민지원군 제63군의 포위망을 8박 9일에 걸쳐 돌파하면
(51)서 총 2,700여 명을 사살하였다.
(52)국군 제6사단, 대한민국 해병 1연대, 미군을 향한
(53)중국 인민지원군 제63군 (187, 188, 189사단)의 파상공
(54)절치부심한 국군 제6사단 제2연대의 목숨을 건 방어로 중공군 3개 사단 공세가 돈좌되었다. 제6보병사단과 해병 1연대, 학도병들의 포위 추격으로 화천 저수지 (파로호)에
(55)중국 인민지원군 30,000명을 수장하였다. 중국인민지원군
(56)제63군은 총 사상자 85,000명의 피해를 입고 궤멸되었다.사상자 수치는 2000년 중국 군사과학원(军事科学院)에
(57)서 직접 발표한 것이다.
(58)[5] 양덕 (평안남도 양덕군 동양리) 전투(1950년 11월)
(59)1950년 국군의 북진 당시 대한민국 해병대 제1연대가
(60)조선인민군과 평안남도 양덕군에서 맞붙은 전투
(61)[6] 도솔산 전투(1951년 6월)
(62)도솔산을 탈환하려던 미 해병 제1사단 병력들이 극심한 손
(63)실을 입자 대신 임무에 투입된 대한민국 해병대 제1연대가
(64)강원도 양구군 해안리 도솔산(해발 1148m)일대를 점령중인 조선인민군 2개 사단(12사단, 32사단)과 20일 간 맞
(65)붙어 승리한 고지전. 도솔산 일대 24개 고지에서는 매일
(66)피를 피로 씻는 고지전이 펼쳐졌다.
(67)[7]서부지구 (장단-사천강 전투) 전투 (1952년 3월 ~ 19
(68)53년7월)
(69)1952년 3월, 서부전선 장단지구로 투입된 해병대 제1연대
(70)가 1953년 휴전 시까지 1년 4개월 동안 오늘날의 판문점
(71)에서 사천강을 따라 임진강 하구까지 11km에 달하는 8개
(72)전초 진지에서 중국인민지원군 제65군 예하
(73)2개 사단(제194·195사단)과 맞붙은 전투
(74)1년 4개월 동안 4번의 대규모 공세를 막아내고 중국 인민
(75)지원군 8,215명을 사살했으며,
(76)해병대 제1연대 장병 776명이 전사했다.
(77)서부지구 (장단-사천강 전투) 전투 (1952년 3월 ~
(78)1953년 7월)에서 화랑무공훈장 수훈
(79)*연나이로 18세이니 현재 나이로는 17세 당시에 입대한
(80)것으로, 정식 입대 연령에 미치지 못하지만
(81)1950년 8월은 전세가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국
(82)군을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83)*원산 상륙 이후 2개월 후, 중국인민지원군의 대대적인 개
(84)입이 시작되었고 해병 제1연대는 함흥과 원산에서 아군의
(85)철수를 위해 아군의 뒤를 쫒는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인
(86)혼성 사단들과 치열하게 교전했는데 이것이 원산-함흥 전
(87)투이다. 원산 상륙 당시의 병력들이 그대로 원산-함흥 전투
(88)에 투입되었으므로 위 참전용사께서도 투입되었을 것으로
(89)* 당시 해병 제1연대는 이 외에도 종전까지 약 24개 전선
(90)에 투입되었기 때문에 기타 전투까지 포함하면 위의 참전
(91)용사께서는 수많은 사선을 넘었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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