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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GEDY OF KOREA
McKFNZIE
센일파’ 영국 기자로치름 떤 일제 만행
역사적입의형사진남려만
영국 (데일리 메일> 특파원인 프레데리 아서 매권지가이미지 텍스트 확인
1907년 항일 의병들올 현장에서 찍은 사진들인데요
이두장 외에 남아있는 항일 의병 사진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님니다.
미스더합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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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스터 선사인’
항일의병 사진
폐데릭 매권지의 ‘항일의병’ 사진
그중 한 장은 항일의병올 상징하는 대표 사진이고요
드라마 ‘미스터 선사인’ 의병사진의 모델이 뜻조
대표적인 친일기재]이미지 텍스트 확인
캐나다 퀴백 태생 스코훈랜드계 언론인
프레데릭 아서 매권지(1869~1931)
매권지논 1869년 캐나다 레백주에서 태어난 스코틀랜드계 언론인입니다.
러 일전쟁 종군기자로 한국올 찾아는데요.
당시 영국은 일본의 망방이어논데,
매권지 역시 대표적인 친일 기자엿습니다.
R #출하 ” “
“일본 정부논 (친일 기자인) 매권지 등 2-3명예계만 러일전
쟁 중군을 허락 . 일본 신문들e 일본군올 칭찬하는 매권지의
기사촌 매일 받아 솜 일본의 조야가 매권지루 환영햇고 마
침내 일왕의 훈장까지 받음 “(1920년 12일 임시정부 파리
위원회 간행 ‘구주의 우리사업-정의의 친우 )
오국하면 일본 정부가 종군올 신청한 다수의 서양 기자 중
매권지 등 2~3명에계만 취재 허가증올 내릿올까요
“당시 일본 신문들은 일본군올 칭찬하는 매권지의 기사을 매일 받아 씻고
매권지논 마침내 일왕의 훈장까지 받앉다 “
‘일본균온 러시야 부상병 및 전정포로든올 관대하게 다싶다. 규온도 확실햇다 “(매권지)
리일 전쟁 때 평양진주름 눈앞예 문 일분군의 행진 모습
러시야 부상병에계 물올 주고 있는 일분군
매권지논
‘러시아 부상병 및 전쟁포로들올 관대하게 다루고 규울마저 확실한 일본군’ 올
극찬하는 글을 계속 실엇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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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7 조약의 각서 조랑>
홍공수비대(육군 1개 대대)외의 군대 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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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군부름 비롯한 육군에 관계되논 관아름 전페활 것.
[3 교육받으 사관은 일본 군대로 부속 . 등
그런 친일파가 항일 투사로 변신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1907년 8월 1일 일어님니다.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고종이 퇴위하고
정미7조약의 각서에 따라 한국 군대가 해산된 그날이어논데요
시미대 재I멘다 제기대다장 박습민 밤 0(1839-1907)
서울시위대 제1연대 제]대대장 박승환 참령이
이 항전의 방아쇠틀 당켜습니다.
박기터 화백 기도화
‘군인으로 나라틀 지키지도 신하로 충성올 다하지도 못하니 만 번 죽어도 애석하지 않다;
임가#구벼 E구 #속
숲b # ##)”(박승환 참령의 유서)
‘군인으로나라틀 지키지도 신하로중성올 다하지도 못햇으니만 번 죽어도싸다”
박참령은
유서지 남긴 뒤 권종으로 자결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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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늬 _트날 시데 실리 1907년 @9밑 안국근대의 봉기 그림
그소식에 연병장에 도열해 있당 병사들은
일제히 함성흘 지르면서 무기고 문을 부수고 무장햇고요
월기한 한국군은 일본군과 3시간 가까이 처절한 전투름 벌엿습니다.
그러나 중과부적이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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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추주기 배 본
성벽올 넘어 탈출한 부대원들은
지방으로 속속 내려가 그곳 의병들과 합세쾌습니다.
이후 서울 시내 분위기가 심상치 안게 돌아켓습니다.
곳곳에서 의병이 봉기햇다는 소식이 들려구요
“각 지방여서 의병이 봉기 패주한 일본 진입군이
온 마음음 유린하고 주민들음 대량 학실 _그러나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매권지)
러 일 전쟁 때 만난 일본균e 자제력
과 군기가 훌륭해다. 그들e . 난목한
(행위률 하지 않앉다; “(매권지)
러일전정 때 명양 진주! 준비하는 일본군 대월
러일전정 떠 러시야군 포로
패주한 일본 진입군이 마을을 유린하고
주민들올 대량 학살하다는 이야기가 퍼려습나다.
그러나 매권지논 쉽제 믿지 않앗습니다.
“각 지방예서 의병이 봉기 패주한 일본 진입군이이미지 텍스트 확인
온 마을을 유린하고 주민들올 대량 학실_그러나
어디까지가 진실임까 (매권지)
“러일 전쟁 때 만난 일본군e 자제력
(과 군기가 훌륭하다 그들e . 난쪽한
형위_ 마지 않앉다 (매권지)
“러일전쟁 때 평양 진주물 준비하는 일분군 대월
러일전정 때 러시야군 프로
왜냐면 매권지논러 일 전쟁 종군기자 시절
일본 군인들의 자제력과 군기가 훌륭햇고,
러시아 포로들올 관대하게 대한 것에 감단사름 연발햇엇거든요
‘고의로 그들(의병)어 가답하고나 숨겨주
이 슬곧 운명물 더 연장하느니 이제라도 죽는 거
거나 무기f eL한 자논 중벌하 받9 것
낫다 망국미 유민으로 사느니 차라리 예국지로 흙
1퉁이 빌생만 아으e 집단책임히 지계 되
낫다 (지방예서 빌표한 격문)
#만약
당센이토 히로부미)이 우리 국권8 계속
가록만 처벌올 밭을 겪이다 *
유린만다면 우리논 합꺼 명망질 것
(아세가와 요시미치 일본 주문군 사정관)
(이모 이로부미 용감문 겨낭해서 빌표만 걱문)
그러나 갈수록 의병 관련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항전올 외치는 온갖 겨문이 서울로 전달되자
기자의 호기심이 발동해서 더는 견달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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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곳곳에서 흥미로운 전투가 계속되고 있8이 영백 나(매권
지논 직접 찾아가 보기로 결심하다 (매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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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민필 서양인의 시람 외삼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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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매권지논 현장 취재에 나서논데요
“(경기) 이천으로 향하는 골짜기틀 내려다보앉다 70-80호 정도의 마
올은 기둥 하나도 성한 것이 없올 정도로 떼어가 되없다 (매권지)
매권지는 젓다미가 된 고율과,
주민들의 일관된 ‘일본군 만행’ 증언올 접하여 충격에 빠집니다.
“(경기) 이천으로 향하는 골짜기록 내려다보앉다. 70-80호 정도의 마이미지 텍스트 확인
울안 기동 하나도 성한 것이 없올 정도로 떼허가 되없다 (매권지)
(경기) 이전으로 향하눈 골짜기름 내려다보앉다
70-80가구 정도의 마을은 기둥 하나도 성한 젓이 없을 정도로 폐혀가 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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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분군어 의대 뵈어가 된 마이여권지 사진)
어떤 님자가 비g만 어조로 만학다
가문의 속보다 입어버렉소 신 OII 이념도
성도 언는 상놓이 되있다오
일으크은 집들 물티우지 말라고 애원하는 노인물 쏘야 국입 어
임신부는 버산이 가까위 집어 누의인다가 심변 어린 성년은
분다는 가분의 목보름 구하려다 입E군이 쓰 승에 고꾸라짐
(대권지의 <대안제국의 비극Tht Trodtgy 이 Kartal)
뜨레대릭 매권지의 상삼 목격담
마을 주민들은 매권지에게 그들이 겪은 금직한 이야기틀 증언햇습니다.
“일본균은 집울 불태우지 말아달라고애원하는 노인을 소아 죽엿다
한임산부는 해산이 가까워 집에 누워있다가 참변올 당햇다
또어떤 청년은 불타는 집에 뛰어들어가 가문의 즉보름 구하려다가
일본균이 손 종예 죽없다”
“충주와 제천 사이의 마을 중 5분의 4가 불에 탓다. 미처 피하지
못한 남녀와 아이들이 불예 타 죽없다 총갈올 돈 일본군이 남편
(이 시떠럽게 살아있는 부인올 능욕해다. 10실짜리 여자아이에게
충올 씩 죽인 천인공노할 증언도 들없다. (매권지)
일제의 만행으로 완전 소실된 충북 제천 마을
10실 떨의 참흑한 학실올 증언한 여인
충북 제천과 충주의 경우 마을의 80% 이상이 불에 탓고요
미처 피하지 못한 남녀와 아이들이 불에 타 국엇답니다.
종갈올 튼 일본군이 남편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부인올 능욕햇습니다
심지어 10살자리 여자아이에게 충올 4 죽인 천인공노활 증언도 들엇습니다.
경기 양평에서 항일 의병올 만난 매권지의 목격담이미지 텍스트 확인
“5-6망의 희냉3이 나타나 인사있다 18-26M 성
료이웃다 그룹 문스하고 언심한 성년은 구식 크대
제목 일고 인얹다 다른 두사람은 군복 바지 두사증
은 조라만 누디기 안벽 차고기억다
어섯 망의 국이
저각기 된따느U 어느 하니 성인 x이 얻있다
매권지가 의병의 발자취틀 쫓아 경기 양근 (양평) 에 들어석올 때
10여개의 십자가 짓발이 마을 곳곳에 게양되어 있엇습니다.
일본군이 십자가 짓발을 단 집은
불 태우지 안듣다는 이야기가 돌아 집집마다 걸어두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양근에서 의병들올 만닷습니다.
경기 양평에서 항일 의병올 만난 매권지의 목격담
5-6엉의 의뤄롭이 나E니 인사앉다 18-26M 곁
넘들이언다 그중 로수하고 인만 성너문 구식 군대
폐표 입고 인외다 다크 두사람은 크다 바지 5사람
은 리만 누데 안격 차[이엽다
이섯 맵이 숙이
퍼각기 달답기 논데 어느 하나 선만 것이 입덕다
“이틀은18~26세 사이의 청년들이없다:
준수하고 환칠한 청년은 구식 군대 제복올 입고있없다:
행색은무척 초라하다
여섯 명의 홍은 제각기 달컷고 녹까지 슬어어느하나 성한 것이 없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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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e 마우 주요하거 보염다 전여 희망없는 전정어
이미 38이 확실해진 사람들이없다: (매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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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총으로 일본 정규군을 어떻게 상대하나:
희망없논 전정에서 이미 죽음이 확실해진 이 사람들이 매우 혹은하게만 보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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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들의 영웅하 눈초리와 자신만만한 미소틀이미지 텍스트 확인
보고 그들의 애국심올 보있다 “(매권지)
의뱀 전조방의 늘음만 모습더간지발임)
“어차피 우리논 죽게 되켓지요 그러나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보다 자유민으로 죽는 것이 훨씬 춤습니다 “(의병들)
그러나 이내
“의병의 영홍한 눈초리와 자신만만한 미소홀 보고 그들의애국심올 보있다”
의병들은 매권지에게
“어차피 우리논 국제 되켓지요
그러나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보다 자유민으로 죽는 것이 훨씬 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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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좀 구해달라. 우리 편이 되어 달라 (의병장)
“기자라는 직업운리상 그럴 수 없다 “(매권지)
“나는 그날 밤이 새도록 부상방올 치료해주고, 그들의
더기 옷도 빌아주없다 . 음식도 먹여주없다; (매권지)
그날 밤 매권지틀 찾아온 의병대장은
“무기 좀구해달라 우리편이 되어 달라”
그러나 매권지논 거절햇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운리상 그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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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좀 구해달라. 우리 편이 되어 달라. (의병장)
“기자라는 직업요리상 그럴 수 없다 “(매권지)
“나는 그날 밤이 새도록 부상병올 치료해주고, 그들의
더기 옷도 빌아주없다 . 음식도 먹여주없다 (매권지)
매권지논 그날 밤이 새도록 부상병올 치료해주고,
그들의 누디기 옷올 빨아주엇고요.
음식도 먹여주없습니다.
그럼 근서 모립기남다
“다음날 아침, 의병들안 만날 때의 차림과 장비 그대로 열치어 떠낫다 의병들이 혹시
우리의 무기들올 가져값올까 잠깐 의심해지만 그런 일은 없없다 “(매권지)
의병들은 다음날 만날 때의 그 모습 그대로 떠낫는데요
매권지논
“의병들이 우리 일행이 소지햇든 무기물올가져릿올까 잠깐 의심햇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있다’
아무리 처지가 궁햇던 의병들이/지만
남의 물건 따위만 넘보는 무레한 짓은 저지르지 않앗다는 뜻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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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 강변예서 의병-에계 포위되자 ‘나 영국인이오!라 소리쳐다 의냉{8 매권지예계 ‘참올 소려 햇는데, 신분올 질 뵈표소 라 사과없다 “(매권지)
의병들올 인터뷰한 매권지논 숙소홀 빠져나닷는데요
모래가 깔린 강변에서 또다른 의병들에 의해 포위되답니다.
“양평 강번어서 의병동에계 포위되자 ‘나 영국인이오’라 소리쳐다 의방-e 매권지예계 ‘충앙 소려 해는데 신분은 질 밖표소’라 사과하다 “(애권지)이미지 텍스트 확인
꼭쓸 것 같아서 매권지가 근 소리로 “나 영국인이요!” 라고 신분올 밝혀답니다.
20여 명의 의병 중신식 제복올 입은 청년이 지뤄관이/논데요
‘당신이 소리친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없소 막 쓸 참이없소
“냄매권지) 그들의) @ 세의5고 시진& 깊없다
사진요 보면 석모이 불어민견이다 (대권지)
의병 중에는 14~16세 정도 밖에 안 된 소년도 있있습니다.
매권지논 이때 그들올 한 곳에 서게 하고 사진올 찍엇논데요
매권지는 회고햇습니다.
“이사진올
‘그야말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눈 사실울알 수 있다”
역사적인 사진이 남은 것이조
‘보면
‘일본군온 중상자 두 명(의병)이 완전히 죽올 때까지 충검으로 찌로고 또 필러이미지 텍스트 확인
그들의 용올 조각조각 벗다 마을 주민들이 시체틀 모아 물어 주없다 “(매권지)
의병 탄압에 투입되논 일본군
일본군의 공격으로 젓더미가 된 마을
이 역사적인 만남을 끝번 매권지논
전날 항일 의병과 일본군간 전투가 벌어진 마을에 도착햇습니다.
그 전투에서 의병 5명이 부상울 당햇는데,
그중 3명은 매권지가 새벽까지 치료해준 청년들이엇답니다.
그러나 다른 2명은 일본군에제 붙잡혀 처참하게 죽임올 당햇답니다.
마을 주민들은
“일본문이 총검으로 중상자 두명이 완전히 국올 때까지 찌고 또질로다.
그들의 몸을 조각조각올벗다
주민들이 시체름 주위 모아 물어 주없다”
1907년 8~1908년 12월까지 의병 1만5189명 전사이미지 텍스트 확인
<일손; 자료 의병 신사자수>
조선4 도토물지
조선 현내q역시
진시시수
진서시수
서청트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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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말 의병 투쟁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희생자가 나뭇는지 가능하기논 어렵습니다.
군대해산 무렵인 1907년 8월
1908년 12월 사이
일본균속 통계로는
전사한 항일 의병수가 1만5189명에 달합니다.
‘희생된 항일 의병의 수가 10만덩이 넘고 양민 피실자는 독립 후가
별
아니고서논 그 통계흘 구일 수조차 없다 “(<한국독립운둥지열사?)
물
물론 그건 일본군 자료조.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철사)는
“희생된 의병수만 10만덩이 넘고
양민 피살자눈 그통계름 구할 수없다”
이토 히로부미( {##5t X)의 15가지 죄약
#
~이토 히로부미의 9번째 죄약
의병들올 폭도라 칭하여 쓰거나 매
달아 죽이고 . 의사들의 가족을 포함해
10여 만 명을 죽인 일”
유소;
안중근 의사 역시 이토 하로부미의 15가지 죄상 중 9번째로
‘항일 의병과 그 가족 희생자가 10만명에 이르게 한 죄’틀 꼽앗거튼요.
여o지 “젓다미가 된 고율과. 주민들의 입간6 ‘입본군이미지 텍스트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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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언움 보고 5으여 & 객데 바져다
군이
10살파리 답이리
탄다고 U면만 C미LU긴지 사엽
항일 의병 현장올 몸소 경험한 매권지논
완전히 다른 사람이 햇조
#rMl mtrtti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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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러데력 아서 여리지
‘한국의 내문움 물격하고 귀국안 기자
‘어느날 저녁 의빛 10있웅 만놔다 의병들은 ‘민족올
의용려담인데.
이 기자는 악의 없는
‘구하지 않으면 중도에 죽기로 결심햇다’ 고 밝혀다 일
공정한 사람으로
불인들은 약달하고 능용하고 살인하고 있없다 이강도
‘만도 못안 자들음
‘(9월24일)
일제가 어니스트 베덕올 법정에 세우려고 증거자료로 제출한 ‘항일의병’ 기사.
1907년 9원24일 대한매임신보의 영문판인 ‘코리야 데일리 뉴스 ‘에 심로다
물론 매권지의 현장고발 기사는 데일리 메일에 실리지 못햇습니다.
매권지논 다른 창구률 찾아습니다.
항일의 기치틀 세운 어니스트 베밀의 대한매일신보/습니다.
대한매일신보 영문관에는
이런 기사가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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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Uriluy CuICIVW
VLIU N CXTIGIAI
무레데력 아서 더권지
‘한국의 내문은 물격하고 귀국만 기자
‘어느날 저녁 의범 그Q,올 만남다 의병들은
‘민족올
의물적달인데.
이 기자는 악의 업는
‘구하지 암으면 중도에 죽기로 결심있다’고 밝덮다 일
보인듬은 약달하고 능용하고 살인하고 있있다 이강도
공정안 사람으로
‘만도 못안 자슬올
‘(9월24일)
일제가 어니스트 베딩올 법정에 세우려고 증거자료로 제출한 ‘항일의병’ 기사.
1907년 9원24입 대한매임신보의 영문판인 ‘코리야 데일리 뉴스 ‘에 신은다
“한국의내륙올 목격하고 귀국한 사람의 목격담인데
어느날 저녁에 만난 의병 10명은
‘민족음구하지 않으면 죽기로 결심햇다’ 고밝하다:
일본인들은 약달하고 능욕하고 살인하고있없다
이강도만도 못한 무리:.
피란하는 것올 의병이미지 텍스트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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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여 충을 삶다.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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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네: 검간하고 가요 소격:
신한계 여 남녀 수백 @p트
“밀립다다 삼이 뒤늬 영드가 조금이라도 텍오면 아얻다
‘습길 데가 얻어 {금민 장균 의Je 김I 바회 죽연고
타죽없다 “(대한매일스
의Je 기터 도장가다 킬리 아 유없다 <며센다$;)
또한 대한매일신보와 (한국통사) , (매천야록) 등 여러 사료에서도
의병 및 양민 학살 기록은 곳곳에 등장합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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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100여덩이 지평군 섬의동 마을 70여 가구에 불올 질러 임산부 한 덩이
타죽없다 “(대한매일신보 1907년 9밑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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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저의 만생 (박은식의 <만국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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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실만 마을 주인 2명의 시체: 손예 넘고 집여 맛보도록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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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인 수복 80 오아 구멍이; 파고 반신이 나오도록 세온 부 벌소하도 10 버고 박징여소
F)부내{ 결간하고 가오 소각.
[이라겨히어 남녀 수백 3. 잡아 옷: 벗권 호 온음일 얼음구되이어 세회 통사’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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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습길 데가 없어 슬출원 강단 의몽e 입컷 나위 국름고 약
만 의Je 기어 도망가다 일어 맞아 죽없다 (<매권야루?)
게어가 인미움 주 존매간
매고지 `다더이가 인 고육과, 주민문의 입간인 ‘입V군
만형’ 급언올 보고 트으여 3 각에 바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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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제3자, 그것도 서양 기자가
죽음올 무릎쓰고 전쟁터지 누비여 기록한 생생자료가 없없다면
상당수 기록은 과장 혹은 터무니없는 거짓으로 치부되없올 겁니다.
그러니 매권지 기자의 현장 기사 및 사진은
그 누구도 토름 달 수 없는 객관적인 사료가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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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저녁 의범 그이입음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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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지 않으면 중도에 죽기로 검심하다’고 밝혀다 일
보인물은 약답하고 능요하고 살인하고 잊있다 이 강도
공정한 사랑으로
‘만도 옷안 자들올
‘(9월24일)
일제가 어니스트 베덕음 법정에 세우려고 증거자료로 제출한 ‘항일의병’ 기사
1907년 9원24일 대한매일신보의 영문판인 ‘코리야 데일리 뉴스 ‘에 실럽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한국의 내륙상황울 전한 사람’ 이 바로 ‘매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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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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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릭 매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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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대한제국의 비극 (The trogedy of Koreot9o8년)
173쪽
매권지논 1908년 항일 의병 현장의 취재기틀 담은
(대한제국의 비극>이라는 책올 퍼벗습니다.
의병 사진 두 장흘 그 책에 실엇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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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립투징(Koreo's Fight for Freedom) (1920년)
1920년엔 1919년 3 1운동사루 중심으로
(한국의 독립투쟁>이라는 책도 발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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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권지의 주청으로 1920년 10입26일 영국 하인 의사당어서 전현직이미지 텍스트 확인
국회의인 17멍, 교육자 9명, 귀족 3명 틈 저영인사 62덩이 모여 한국
진우회The Leoque of Friends of the Koreolf 결성
‘일본P_선랑한 한국인의 재산올 텔취해서 100만여명의 반민을 만주 방면으로 몰아념
용일인8 한인요 노예 제도 아래 족아늄고
토지 재산 자유름 빼앗고
교회틈 없애려
자르`저 <대안민국 임시정부 자모집?
‘1920년 12″ 입
시정부 미리워면회’가 떠년 ‘구주의 우리 사업-더유령외고’
105인 사건911)8 일으켜 지금까지 행한 일본의 학정안
“(매권지의 인설)
그해 10월에는 영국 현지에서 한국친우회라는 친한단체의 발족올 주도합니다.
창립식은 영국 국회의사당에서 열려는데요
전현직 국회의원과 교육자 언론인, 종교인, 귀족과 각계 인사 총 62명이 참석햇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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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진우리 굽의안
1안국내 사회 정치, 검치 ;교 등의 여러 연상 널리 일린다
P)한국인. 위해 정의의 용호화 자유의 회복올 돕는다
p)안국인혼의 324 지리다
4)정치적 경제적으로 박해블 받온 한국인라 그 과부 고아켓올 돕는다
이 자리에서 일제의 식민정책올 비판하면서 한국의 실상울 널리 알리고
한국인의 정의용호와 자유회복올 위한 지원 등올 결의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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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버야
매권지논 이 단체의 간사로 활악햇습니다.
매권지논 이후데도 한국인의 독립올 지지하여 언론활동올 벌엿논데요
1931년 62세의 나이로 타계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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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지게 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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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손 11년 전의 글(때대한제국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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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1908년)올 반복하자면 ‘일본에서
군부가 늑세하면 한국을 더욱 가록하게
[통치할 거고 결국 만주와 중국까지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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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해서 커다란 분쟁올 일으길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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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권지의 <한국의 독립운동:1920년)
매권지의 두 책은 소름끼치도록 정확한 예언서로도 명성을 얻엇습니다.
“일본에서 군부가 독재하면 만주름 침락하고 중국에까지 확대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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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안에 극동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이미
그저야활 짐은 미국이 감당하게 월 것”
“이 주장올 ‘반일적’이라 한다면 나는 기꺼이 반일의 피고가 되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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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은 20여년 뒤 현실로 다가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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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1920년 무렵) ‘군국주의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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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일본 정책올 장악하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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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안 미국의 대학과 기업체에서 두각올
나나타내고 있다 이 민족에서 기회만 주어지면 그들안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매권지의 <한국의 독립운동>.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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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권지의 또다른 한마디가 심금올 울림니다.
“이민족(한국인) 에제 기회만 주어진다면 그들은 무엇올 할 수 잇물지 보여출 것이다”
‘((한국의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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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올 향한 무한애정, 무한신회틀 보랜 겁니다.
제2 제3의 친일파가 곳곳에서 고개름 들고 있는 요즘인데요
새삼 매권지 같은 분 보기가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그리고 매권지가 찍은 사진에 담긴 의병들의 눈도
바라보기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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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왕실 훈장을 받고 전쟁을 취재할 권한까지 부여받았던 친일파 영국 기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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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프레터락 아서 매권지
FrederickArthur MacKenzie
1869년
출생
귀백주
1931년 (향년 62세)
사망
취백주
국적
캐나다
직업
기자
서훈
건국혼장 독립장 추서
일제의 만행을 목격하고 양심의 소리에 따라 대한 독립을 지원하는 친한파로 돌아섰고 사후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