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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300의 나라, 스파르타는 왜 사라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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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통령실에서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는 저출산 현상 때문에 망했다. 그만큼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 문제다.”라는 식의 발언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가지고 스파르타와 저출산 어쩌고 했는데…. 스파르타의 저출산은 바로 부동산 투기와 그로 인한 사회 양극화 현상의 심화 때문이라는 사실은 아시나요?)

이 발언 때문에 국내의 인터넷상에서 스파르타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화제가 되었는데, 그래서 예전에 써두려고 했던 글을 이번 기회에 써보려고 합니다.

미국에는 2006년, 국내에는 2007년에 개봉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300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기원전 480년 그리스를 침략했던 페르시아(현재의 이란) 황제, 크세르크세스가 이끈 500만 명의 대군을 상대로 스파르타 국왕 레오니다스와 그의 호위대 300명이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맞서 싸우다 전멸당한 테르모필레 전투를 주제로 삼은 내용입니다.

(영화 300. 역사왜곡 논란이 있었지만 영화 자체로만 본다면 꽤나 잘 만들었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저도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영화 300에서 지나치게 과장되기는 했지만 실제로 스파르타 군사들이 용감하게 싸웠던 것은 사실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인 헤로도토스가 쓴 저서 <역사>에서도 스파르타 군사들의 두터운 방어를 뚫지 못하고 페르시아 병사들이 번번이 밀려나자, 높은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크세르크세스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3번이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고 묘사되어 있었으니 말이죠.

이 테르모필레 전투는 비록 샛길을 알려준 그리스인 배신자의 도움을 받아 페르시아 군대가 스파르타 군대를 포위하면서 스파르타 군대의 전멸로 끝났지만, ‘그리스의 자유를 위해 최후까지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스파르타 용사들’이란 이미지가 당대는 물론이고 그로부터 2천 년이 지난 지금에까지 널리 전해질 만큼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테르모필레 전투 이후에 벌어진 플라타이아이 전투(기원전 479년)에서 스파르타 군대는 페르시아 군대를 궤멸시킴으로써 테르모필레 전투의 복수 겸 승리를 거두었고, 이 전투로 인해 크세르크세스는 그리스를 정복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페르시아로 철수하여 결국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벌어진 그리스 세계의 내전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가 경쟁국인 아테네를 누르고 승리하자, 스파르타에는 외부로부터 막대한 돈이 흘러 들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스파르타의 몇몇 대귀족들은 크나큰 부를 얻고 땅을 마구 사들여 재산을 불렸으나, 그럴 처지가 되지 못한 많은 스파르타 시민들은 대귀족들한테 땅을 헐값에 팔아넘겨버려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이처럼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스파르타는 인구 감소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한 예로 기원전 400년에서 서기 250년 사이 스파르타의 일반 시민은 3000명에서 700명으로 감소했는데, 그 중 자신의 땅을 가진 시민들은 고작 100명에 불과했습니다. 이 100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집이나 재산이 없는 극빈층이었고, 자연히 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는 것을 아예 포기하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기원전 146년이 되자 서쪽에서 쳐들어온 로마 군대 앞에 스파르타는 아무런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힘없이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로마가 과거 페르시아보다 더 강력해서가 아니라, 스파르타가 극심한 인구 감소로 인해 도저히 로마에 맞서 싸울 형편이 못되었던 탓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저출산 현상 때문에 스파르타가 망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 저출산 현상의 원인은 스파르타인들이 이기적이거나 어리석어서 아이를 안 낳았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를 낳고 싶어도 도저히 낳을 수 없었던 사회 구조 탓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 구조는 부자들의 부동산 투기로 벌어진 양극화(빈부격차) 심화 현상 때문에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실에 근무하는 누군가가 어디서 스파르타와 저출산 현상에 관해 주워들은 바가 있어서 대통령실에 그렇게 전해준 듯한데, 문제는 그 원인에 대해 부동산 투기나 양극화 심화 현상 때문이라는 말은 빼고 아마 저출산 때문이라고 말을 잘라서 전해준 것으로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지금 대통령이나 그 주변 인물들은 하나같이 부동산 투기에 연관이 되어 있는데, 차마 그런 사람들한테 “부동산 투기와 양극화가 심해져서 스파르타가 저출산 현상을 겪다가 망했습니다.”라고 말할 엄두는 내지 못했을 것이 때문이죠.

게다가 현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부동산 투기꾼이거나 아니면 그쪽과 강하게 연관이 되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과연 스파르타가 저출산 현상 때문에 망했다는 소리를 할 자격이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정말로 그들이 지금 한국 사회의 심각한 저출산 현상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먼저 부동산 투기부터 억제하자고 해야 할텐데, 현실은 정반대로 헌법재판소마저 합법이라고 인정한 종부세도 없애겠다는 식으로 오히려 어떻게 해서든지 부동산 투기에 계속 불을 붙이려 애쓰고 있으니 말이죠.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인데, 도대체 케켈 운동과 저출산이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 계신가요?)

그럼 현 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그대로 두고 저출산 현상을 어떻게 개선하겠다는 것일까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얼마 전에 그랬던 것처럼 폐경이 온 할머니들을 불러모아놓고 케겔 운동을 해서 출산율을 올리겠다는 식의 황당한 보여주기 쇼나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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