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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황소1호 공작은 본디 1·21사태에 대한 응징보복 작전으로기획되었다가 호랑이공작 목표와 침투경로가 겹쳐 연기되었다. 그러다가 1968년 10월말에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터지자 작전을 강행해 1개 소대 병력 중 소련군사고문관을 포함해 20여명을 사살하는 망외(望外)의 전과를 거두었다. 이 같은 전과는 그 뒤에 귀순한 북한군 707GP장 유대윤 소위의 신문첩보로 교차 검증되었다.
(1)북한군 막사 비포장 군사도로 언덕 위로 정치보위부 소대 병력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 순간이었다. 검은색 승용차에 탑승한소련 군사고문관의 호위병력. 그는 크레모어 격발기의 안전핀을 풀고, 팀장의 신호에 맞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강원도 평강시 평강군 하진리 계곡에서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이 하늘을찢었다. 이미지 텍스트 확인
(2)아비규환 속에서 북한군 군관을 잡아채는 순간, 요란한 총성이울리기 시작했다. 손등을 스치고 지나가는 방망이 수류탄의 파편. 피투성이가 된 손을 바라보며 숨을 몰아쉬는 동안 혀는 바싹말라 입천장에 달라붙는다.
(3)10시간 뒤, 그는 죽음의 고비를 넘고 넘어 우리군 GOP 통문에다다랐다. 미리 당도해 있던 동료 팀원이 살아온 그를 보고 눈물을 쏟는다. ‘다시는 이런 목숨 거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 가슴속으로 되뇌임이 이어지지만, 쉽게 현실이 될 수 없음은 누구보다잘 알고 있다.’
(4)부산이 고향인 홍남형(가명·60)씨가 인천에서 ‘물색관’에게 입대를 권유받은 것은 1966년 3월, 그의 나이 16세 때였다. 1968년 11월의 침투임무는 그가 수행한 마지막 작전이었다. 그러나수백만 원의 돈을 주겠다는 애초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후 30여 년 세월 동안, 그는 자신이 비무장지대 북방한계선을넘나든 인물임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함께 작전하다 죽은 동료의 누이를 알고 있었지만,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명령에 끝내 전사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울진 삼척 무장공비 사건이 터지자
HID 대원 6명이 북한에 침투해
소련 군사고문관,북한 장성을 포함한 북한군 20여명을 사살함
원래 가능하다면 주요인물을 납치할 예정이었지만
포승줄로 묶는 순간 북한 지원군이 몰려와 어쩔 수 없이 사살하고 복귀
북한 장성을 직접 사살한 대원은 당시 17세
이미 16세(중3)때 처음 북에 침투한 경력이 있었고
16세부터 20세까지 복무하며 북한에 13번 침투해 살아남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