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국민학교 이학 년 때인가. 오락실에서 친구들과 게임을 했다. 친구가 우연히 고장 난 오락기 뒷면에 돈통을 발견했는데 몇 명이서 동전을 꺼내 게임을 했고 오락실 주인아줌마에게 걸려 뺨을 맞았다. 주인아줌마는 동전 훔치기에 가담했던 아이들 각자에게 오만 원씩 집에서 가져오라고 했던 것 같다. 돼지 저금통을 뜯었었나. 옷장 안 아버지 옷 주머니 안에도 돈은 얼마 안 됐고 나는 형들과 친구들과 집을 나갔다.
저수지 길과 외갓집 길을 지나 모르는 시골길을 걷고 걷다가 깜깜해져 비닐하우스 안에서 잠이 들었는데 불을 피워서였던 건지 무리 중 한 명이 자수를 했던 건지, 우리는 당일날 저녁 경찰에게 붙잡혔다. 난 세상에서 형을 가장 무서워했는데 집을 나간 이유도 부모님보다 형에게 오락실 사건을 발각되면 맞아서 반 죽거나 아님 정말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찰서엔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찾아왔는데 나는 형만 혼자 왔다.
걸어서 삼십 분인가 한 시간인가 경찰서에서 집까지 걸어가는데 형은 자전거를 끌고 나는 고개 숙인 채 옆을 따랐다. 형은 한 두 마디 물었었나. 때리지도 않았고 별말 없이 먼 길을 어색하게 걸었다. 종아리를 때린 게 아빠였나 엄마였나. 엄마가 때린 건지 우신 건지 모르겠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는데 아마 태어나 맞은 것 중 가장 안 아프던 날이었다.
소리도 없이 비닐하우스와 밭들을 번쩍이며 비추던 경찰차 경광등. 집에 돌아가던 길은 가로등도 없고 까맣게 선 버드나무들이 무당처럼 팔을 흔들었다. 몰래 훔쳐본 형의 옆얼굴이 희미했는데 굳은 표정으로 앞만 보고 있었다. 붙잡혔던 비닐하우스부터 집에 돌아가는 숲길까지 보이지도 않는 황소개구리 떼가 뒤쫓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