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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상시계백화점
(2)2 촬영 국제신문 사진기자 김탁돈
(3)3 제공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4)■ “부산 마산시민들 그냥
(5)탱크로 싹 다 밀어버리면 됩니다!”
(6)”필요하다면 내가 직접
(7)발포 명령을 내리겠다”
(8)확인된 것만 무려 1,500여명이 연행되고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9)오랜시간동안 잊혀간 부산의 이 사건.
(1)In 촬영 국제신문 사진기자 김탁돈2 제공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미지 텍스트 확인
(2)1979년 10월 16일, 부산
(3)1 “유신 철폐! 독재 타도!”
(4)부산대의 한 학생이 강의실에서6 선언문을 나눠주며 학생들에게거리로 나가 독재와 맞서
(5)싸우자고 외쳤습니다.
(1)10-16부마항쟁은 이미지 텍스트 확인
(2)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3)부대형탐연구소
(4)“유신 체제 아래에서는
(5)대통령도 직접 뽑지 못하고
(6)학교에도 사복 경찰들이 상주해
(7)어떤 사람은 대통령을욕했다고
(8)바로잡혀가 징역 3년을 살기도 했습니다.”
(9)정광민 / 시위를 주도한 당시 부산대 경제학과 2학년
(1)11 제공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미지 텍스트 확인
(2)3 최신유선형 마음호 신은 열차운행 2) 설악산관광열차운행계
(3)자유라는 기본권 침해와
(4)열악한 노동문제로 쌓였던
(5)대학생들의 분노가 터져나왔습니다.
(6)이에 직장인과 고등학생을 비롯한부산의 시민들이 합류했고
(7)시위는 가까운 마산으로도 번졌습니다.
(8)바로 10.16 ‘부마민주항쟁’입니다.
(1)10월 18일 0시 비상계엄 선포 이미지 텍스트 확인
(2)무자비하게 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3)“총 개머리판으로 시민들 머리를 찍고구타하고 그냥 막 잡아가서 가두고저는 심지어 아버지가 간첩아니냐며거꾸로 매달려 물고문도 당했습니다.”
(4)- 정광민 / 시위를 주도한 당시 부산대 경제학과 2학년
(1)직접 부산으로 내려가 시위를 목격한 이미지 텍스트 확인
(2)당시 중앙정보부 김재규 부장은
(3)민심을 파악해야 한다며
(4)온건 대응을 제안했지만
(5)박정희 전 대통령과 차지철 당시 경호실장은
(6)강경 대응을 밀어부쳤습니다.
(1)그동안 권력 다툼으로 계속해서갈등을 겪은 김재규와 차지철은부마항쟁 진압을 놓고도 대립했고 이미지 텍스트 확인
(2)결국 1979년 10월 26일
(3)박정희 전 대통령과 차지철은
(4)김재규의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1)촬영 : 국제신문 사진기자 김탁돈제공: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미지 텍스트 확인
(2)”결국 우리 삶의 방식의 문제예요.
(3)한 사람의 독재를 위해
(4)우리들의 기본권이 제한될 것인가,
(5)아니면 정말로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이
(6)주인으로서 민주적이고 자유롭게 살 것인가.
(7)부마항쟁은 불의에 저항한
(8)굉장히 중요한 정신적 가치입니다.”
(9)-정광민 / 시위를 주도한 당시 부산대 경제학과 2학년
(10)40년이 지나서야
(11)”국가기념일로 제정된 부마민주항쟁.
(12)지금부터라도 제대로
(13)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14)글·구성 김혜지, 권숙원 인턴 그래픽 김태화기획 조제행 제작지원 쇼박스
(1)홍준표 “올해 대구에 박정희 동상·박정희 광장 추진” 이미지 텍스트 확인
(2)박연수 입력 2024. 3. 11. 17:23
(3)박정희 동상, 동대구역 광장, 대구도서관 등 2곳에 건립
(4)동대구역 광장은 박정희 광장으로 이름 변경
(5)대구시가 동대구역 광장과 대구 도서관 2곳에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건립을 본격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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