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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라남도 강진군
(2)마을 주민
(3)크기가 이 둘레보다 엄청나게 커요
(4)사람 키의 두 배 정도 되죠보통 3~4m 정도 되고
(5)무덤 높이가!
(6)- 논에 있는 흙무더기 발견
(1)논 한가운데에 위치한 대형 무덤 이미지 텍스트 확인
(2)[마을 주민
(3)오래됐죠 우리는 잘 모르죠
(4)저희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죠꽤 오래됐을 거예요
(5)옛날 조상 때부터 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1)일반 크기의 무덤 이미지 텍스트 확인
(2)약 20배 이상 차이
(3)과연 대형 무덤의 정체는?
(4)논 한가운데에 왕릉이 있는 것이
(5)가능한 것일까?
(6)이필도 교수 / 을지대학교 장례지도학과
(7)왕릉은 보통 둥글게 생겼는데
(8)(논의 무덤은 옆으로 많이 퍼져있잖아요 형태가….
(9)[조선왕릉논에 있는 대형 무덤
(1)[이필도 교수 / 을지대학교 장례지도학과 이미지 텍스트 확인
(2)논 한가운데에 묘를 만들고
(3)묘의 크기가 보통 일반 서민들의 크기 이상으로
(4)거의 왕릉의 크기만큼 큰 무덤이 있다는 것은보기 드문 경우죠
(5)저 큰 무덤이 있어서 이 근방에는 농사가 잘돼요 매년
(1)물빠짐이 좋고 이미지 텍스트 확인
(2)물 좋고 병충해도 없고
(3)30년째 농사 피해가 없다고요 저 무덤이 있기 때문에
(4)무덤을 관리하는 수상한 사람들
(5)조상님의 묘인가요?
(6)조상님의 묘는 아니고요
(7)저는 12대손이고 할아버지의 말 무덤입니다
(1)말 무덤? 이미지 텍스트 확인
(2)우리가 해마다 자손들이 400년 이상말 무덤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3)정말로 말의 무덤일까?
(4)김덕진 교수 / 광주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
(5)’양건당 애마지총’입니다
(1)양건당은 황대중 선생의 호 이미지 텍스트 확인
(2)임진왜란 때 전투에 참여했던황대중 장군의 말 무덤입니다
(3)황대중 장군(1551-1597)
(4)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
(5)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활약한 무장
(6)황대중 장군 말의 무덤이
(7)왜 만들어진 것일까?
(8)김덕진 교수 / 광주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황대중 장군이 남원성 전투에서
(9)순절(충절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하게 됩니다
(10)말이 주인의 시신을 등에 업고
(1)남원에서 여기 강진까지 걸어온 거죠 이미지 텍스트 확인
(2)돌아온 이후 아무것도 먹지않고 고개만 떨구고
(3)황장군의 장례가 끝나고서야 숨을 거뒀고
(4)그 충정을 가상히 여겨
(5)무덤을 지어 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6)사람들은 말의 충성심에 감탄하여
(7)말 무덤을 만들게 됨
(8)김덕진 교수 / 광주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
(9)어떻게 보면 주인과 함께 가는수족과 같은 그런 관계이니까
(10)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사랑한 동물에 대해서도
(11)이렇게 애틋하게 여겼다…
(12)후손들은 황장군을 고향으로 데려온 이 말 때문에후대에도 황장군을 모실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해장군의 무덤과 더불어 말을 무덤도 함께 살펴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13)| 김상윤
(14)산에 묘를 쓰면 보는 사람도 적을 것 같아서
(15)이 넓은 곳에
(16)거룩한 말의 충성심을
(17)전파시키기 위해서가 아닐까…
(1)황대중 장군 12대손 이미지 텍스트 확인
(2)황대중 장군님과 말에 대해 지금부터라도
(3)국민들이 그 업적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1)’양건당’ 황대중 장군 이미지 텍스트 확인
(2)의주로 피난 가는 선조를 호위했던 무사 80명 중 한
(3)한쪽 발이 불편 했으나 활쏘기에 능했다고 함
(4)진주성 전투 당시 명나라 장수인 이여송 휘하에서
(5)한산도 대첩 당시 이순신 통제사 휘하에서 참전
(6)이때 다리에 총을 맞아 양발을 절게 됨
(7)정유재란 당시 이복남 병마절도사 휘하에서 참전 했으나 가슴에 총을 맞고 전사
(8)“과거의 다리는 효건(孝), 지금의 다리는 충건
(9)(忠蹇), 두 다리를 함께 절룩거리니 양건(兩) 이로다.”
(10)- 이순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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