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미제사건

조선시대 미제사건

이미지 텍스트 확인

(1)1533년(중종 28) 2월 16일, 한성부(조선 왕조 수도 행정 담당)에서 급한 보고가 올라왔다.
(2)”전하, 용산강 근처 무녀의 집 뒤에서 어린 아이가 다리가 잘려진 채로 발견되었나이다.
(3)그 아이는 죽지 않고 말하기를, ‘저를 업고 가면 내 발을 자른집을 가르쳐줄 수 있습니다.’
(4)라고 하였나이다.
(5)저희 한성부가 생각하기에, 아이를 심문하면 때는 늦어버리고 용의자가 도망갈 것이니,
(6)아이와 함께 빠르게 그곳으로 가서 용의자를 체포하는게 옳다고 생각하옵니다.”
(7)한성부의 보고를 접한 중종 대왕은 놀라며 말하기를,
(8)”아이를 치료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니, 신중히 간호하여 죽지 않게 하고,
(9)속히 포도 대장(조선 시대 수도 치안 담당관)을 불러 용의자들을 체포하게 하라!”
(10)포도 대장은 왕명을 받잡고 즉시 군사를 풀어 의심나는 사람들을 잡아들였다.그리
(11)한성부에서 자세히 올라온 보고서에 따르면, 사건의 내막은 이러했다.고
(12)1533년 2월 무렵, 추위가 한창일 때 용산강 근처갑사(조선 시대 군사) 김귀성의 집
(13)이 아이가 두 발이 잘려진 채로 발견되었고, 이 아이의 이름은 ‘개춘’이었다.
(14)그리의금부(조선 시대 사법고기관)에선 아이에게 발이 잘린 이유를 물었는데,
(15)아이가말하기를 이렇게 대답한 것이었다.
(16)”어떤 사람이 칼로 제 다리를 자르며, ‘죽어라 죽어라’고 하
(17)였습니다.”
(18)즉 아이의 진술에 따르면, 이 아이는 어떤 괴한에 의해 칼로 다리가 잘려진 것이었고,
(19)그 괴한이 이 아이를 용산강 근처버린 것이었다.에
(20)영화 속 조선 시대 갑사(왕의 호위, 수도 및 궁궐 수비, 변방 수비)
(21)그리고 용산강 근처에 살고 있던 갑사(조선 시대 군사) 김궁궐 호위를 위해 직귀성이
(22)장으로출근하있을고때,
(23)두다리잘려진 이 아가발견하여 관청이를에신고했고,
(24)관청에서는 한성부에 보고하였으며, 한성부가 왕인 중종에게까지 보고했던 것이다.
(25)조사과정에서, 노’한비덕’이라는자가용의자로 지목되었
(26)한덕의 진술에 따르면, 한덕이 이해 1월에 그의 주인 집을 왕래하고 있었는데,
(27)그 과정에서 허리 아래로 동상이 걸린 이어아이린길에가버있는 것을 발견했러져
(28)이 아이처의지안쓰러가집에 데리고 와 보살폈다고 하는 것이었다.워서
(29)그러나주인이더러운 아이를 데려왔다꾸짖어서 길에 도로 내버렸다고 한다.며
(30)그런데 한덕이 다시 내버린 이 아이를, 이웃중에 누군가 그 아이를 또 데려갔다가 다
(31)시 버렸고,
(32)이렇게 버려진 아 이또 김 별좌의 종 ‘연수’라는 자가 데리고 갔다고 한다.이었던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발 자른 이유을듣지 못했고, 아직 사건까지 진상이 풀리지를
(33)는의
(34)그런데 갑자기 ‘중덕’이라는 노비가 오더니 자신이 이 아이의 생모라는 걸 자처했,
(35)스스로 이 아이의 생모라고 자청한 중덕이라는 노비가 말하기를,
(36)”이 아이는 옥가이… 입니다. 지난해 9월 29일에 잃어버렸
(37)올해 2월 17일에 발이 잘린 아이를 업고 가더라는 말을 듣
(38)우리 부부가 쫓아가 보니 과연 옥가이였습니다.”
(39)의금부(조선 시대 사법 기관)의 관원은 다시 한번 아이에게 발이 잘린 이유를 물었는
(40)이 아이가 갑자기 자신에게 죽을 먹이던 ‘한 덕 가리키며 저 사람이 자신의 발을’을잘랐다고 했다.사건을 보고 받은 중종 대왕도 마음이 편 않았는지,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전교치
(41)(참고로 이 아이는 노비다.)
(42)”이 아이의 두 발을 잘죽이지 않았어도 상해한마음은 죽인 것과 같다.이 아이는 생모라고 자청 자(한 중 덕)에 보내도록 허락하게비록랐으니,
(43)’의문점’이 있다.그러나 여기서 석연치않은
(44)다음은 승정원(조선시대 국왕 비서 기관)이 중종에게 올린 의견이다.
(45)”전하, 전하께오서 분명 발이 잘린 그 아이를 생모에게 보내도 록 허락한 전교가 있 었 나이다.헌데 지금까지 조사한 것 에 이 아이는 한덕이 거두어르면,
(46)따
(47)중덕이라는 노비는 스스로 이 아이의 생모라고 자칭하고 있나이다.
(48)두 집의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은데도 그 아이의 소재를 알지
(49)못했으생모라는 것을 믿이을 수 있겠습니까?차라리 한덕과 중덕을 함께 모두 가두는 것이 어떻습니까?”니,
(50)지금 어떻게중덕
(51)있기에, 중종 대왕은 승정 의견원의따로 갑사 김귀성으로 하여금 아이를성껏 간호하여 죽지 않게승정원말도일리가을따랐고
(52)정하라고 명하였다.
(53)그러나 아직도 사건풀리지 않았고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고 있었다.,그리하여 중종 대왕은, 한덕과 아이가 있는 곳에 함께 가게 하여진상은
(54)중덕을
(55)다시 한번 면밀히 조사를 시도해봤다.
(56)의금부(조선 시대 사법 기관관):리아이야, 어떤 사람이 네
(57)발을 잘랐느냐?
(58)노비 아이 : (한덕을 가리키며) 이 사람이 제 발을 잘랐습니
(59)의금부 관리 : 더 진술하고 싶은건 없느냐? 괜찮으니 마음껏
(60)말하거라.
(61)노비 아이 : 제 발을 자를 적에머털모자를 쓴 자가 옆리에
(62)에 있었습니다.
(63)이 조사 소식의 내용을 모두 들은 중종 대왕이 말하기를,
(64)”그 노비 아이가 무슨 사사로운감정이 있어서 한덕을 지목했
(65)겠는가?이 필는 한덕이 자른시그리고 아이의 진술에 의하면, 머리에 털있었다고 한다.이 사람도 속히 소환해 조사해야 할 것이다!”
(66)것이다!
(67)쓴 자가 옆에모자를
(68)그리고 중종 대왕은 갑사 김귀성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69)”너는 그 아이를 신중히 간호하 고 먹 을 것과 입을 것이 모자라지 않게 할 것이며,그 아이를 절 대 죽게 하지로말 라.그 아이가 불행히 죽으면, 너는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아
(70)야 한다.”
(71)”예, 전하… 신이 정성껏 아이를 보살펴 모자란 것이 없도록
(72)하겠사옵니다.”
(73)위에서도생급했듯이, 자칭하는 중덕은 아이를 지난해모라9월 잃었다고 했으며,에한덕은 올해 초에 얻었다가 주인의 꾸짖음으로 다음날에 버렸다고 했다 .그 사이의 기간이 ‘5개월’이고, 중종은 이 ‘언
(74)공백’에 주목했다.5개월의
(75)그 ‘5개월동안’ 당시 아이는 어디에 있었으며, 언제 발이 잘렸는가?게다가 아이 데려갔던 사람도 한 명은 아니었기에를때 만약 발이 잘렸다면, 아이가 자신의려갔을리가 없을테니,그 시점을 아는 것이 사건의 핵심이라 판단한 것이다.
(76)누군가 그 아이를 데발이 잘린 걸 모를
(77)이 사건은 조선 조정 전체에까지 알려졌으며, 3정승을 비롯해 조선 시대 재상들도 주깊게 살펴 보 았다 .
(78)비록 일개 노비 아이가 다리가 잘린 사건이고, 어떻게 보면 나랏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별로 중요치 않은 사건이었지만,대충 넘어가지 않고 모두들 관심있게 살폈으며, 중종은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 지원을아끼지 않았다.그리고 이때 지금부사(知義禁府事: 의금부 소속 정2 품 관리) 유보와 동의금부사(同府事) 언경 의 보고가 올라왔
(79)다.
(80)(의금부 : 조선 시대 사법 기관)
(81)부 조사 내용을 아뢰겠나이다.의저희가 한덕을 데리 아이에고 가서 보이며게,’누가 네 발을 잘랐는가?’라고 하니, ‘한덕입니다였나이다.그리고 한덕과 중덕 같이 앉혀놓고 다시 ‘어느 사람이 네을발을 잘랐는가?’하고 물으니,또 한덕을 가리켰습니다.잘랐는가?’하니, ‘칼입니다’하였고무엇으로’어디에서 잘랐는가?’하니 , ‘방 안에서 잘랐습니다”전하, 저희 의금
(82)답하’라고
(83)’
(84)하였라고
(85)으며,’언제 잘랐는가?’하니, ‘낮에 잘랐습니다. 두 손을 묶고 솜으제 입을 막았습니다. ‘
(86)로
(87)나이라고하였
(88)아이의 증언으로 봤을 때, 한덕이 아이의 다리를 자른 것이 틀림없었고,그리하여 의금부는 한덕을 추문(꾸짖어 물음, 심문함)할 준비를 다 마치고중종 대왕에게 추문할 승인 얻으려고 하였다.을문제는 ‘추가 진
(89)술내용’이었그러나
(90)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한덕이 이해 1월 무렵에 그 아이를 주인집에 데리고 왔는데,주인 이 더럽 다 며 꾸짖어 그 아이를 버서렸다고 했다.그런데 한덕의 추가 진술에 의하면, ‘수은’이라는 사람이 다시 그 아이를 데리고 갔고,그 뒤에는 ‘손금’이 다시 데리고 갔다고 했다.여기서 수은과 손금의 진술서는 사건을 더 미궁 속으로 빠지게 했다.
(91)(당시 이 사건을 맡은 조선 왕조 수사관의 입장이 아니었을까?)
(92)진술서에는, 자 신의 노비가 한 아이 를 업 고 왔는 데 ,두 발이 동상에 걸렸고 형체 역시 더러워서 자신이 노비에게 그 아이를 버리라고 명했수은의
(93)손금의 진술서에는, 한 아이가 두 발이 동상에 걸려 검게 부어오른 채 울고 있으므로주인 집에 데리고 왔다고 한다 .그러나 주인이 꾸짖으므로 곧 버렸다고 했으며,그 뒤 다시 무 녀 귀 그 아이를 데덕이리 고 갔다고 한다.
(94)이들 진술서에 의거하자면, 한덕이 버 리고 간 아이를 수은과 손금이 다시 거두었다가버렸다는 이야긴데,이 아이가 동상이 심하게 걸리긴 했지만, 이 당시 엔 아이에게 분명 두 발이 있었 다라는 이야기다.
(95)곧 의금부는 귀덕도 붙잡아 심문했고그 아이와 관련해 진술했다.한 아이가 두 발이 동상에 걸 려 있으므 로 집 데리고 왔는데,으로이해 2월 5일에 발 하나가 동상으로 빠졌으며, 2월 8일에는 또 다른 발이 동상에 빠졌다는 것이다.그리고 ‘자질금’과 ‘을비’라는 자들이 이것을 똑똑히 보았다고 증언했다.곧 귀덕 은
(96)목격자로 주목된 자질금은,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97)”무녀 귀덕이 정말 아이를 데리 고 살렸는데, 당시엔 두 발이 완전하였지만,두 발이 빠졌을 때는 보지 못했습니다.”와
(98)을비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99)”귀덕이 두 발이 동상에 걸린 아이를 살리려는 것을 보았지만,발이 빠졌을 때는 보지 못했습니다.”
(100)즉슨, 귀덕의 증언을 일 동의하면서부발도 빠이 진이렇게 되면 정황상 귀덕이 강력한 용의자가 되는 셈벗어나야 하는데,문제는 분명 이 아이는 ‘한덕’이 자신의 다리 잘랐다고 하니, 함부로 판단하긴 어를려운 상황이었던 것이다.걸 보지는 못했다고 증언했다.오히려 한덕은 용의자에서이고,
(101)그래서 다시 한번 의금부는 정황상 유력한 용의자였던 귀덕을 아이에게 데려가 질문했
(102)”아이야, 너는 이 사람(귀덕)을 아는가?”
(103)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104)”아이야, 발을 자른 자가 이 사람(귀덕)인가?”
(105)이 물음에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106)”아이야, 이 사람(귀덕)이 너를 살렸는가?”
(107)그러자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108)”아이야, 이 사람(귀덕)이 너를 데리고 갔을 때 네 발이 잘려져 있었느냐?”그러자 아이가 대답하기를, ”
(109)하였다.다.”라고아닙
(110)그렇다면 정황상 한덕이 아이의 발을 자르지 않은 것이 분명했고,손금, 자질금, 수은, 을비 등의 증언을 곱씹어도 한덕은 혐의가 없음이 맞다.물론 아이는 한덕이 자신의 다리를 잘랐다고 했기에,한덕을 추문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지만,5세의 이 미숙한 아이의 말만 믿고 한덕을 고문하여 함부로 심문할 수는 없었다.이때 의금부에서 중종 대왕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111)”전하, 저 조선의 율법에서도희’80세 이후와 10세 이전 사람의 말을 무조건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라는 법이 있나이다.아이의 발이 잘리 않았을 때 데리고 간 것 명백하니은 ,자르지 않은 건 이로써 분별할 수 있나이
(112)귀덕
(113)아이의 증언이 있다하더라도한덕이발을
(114)다. “허나! 사건이 애매모호하니, 저희들은 도저히 이 사건을 조처하지 못하겠나이다.”
(115)의금부의 보고를 접한 중종이 말하기를,
(116)”다른 사람을 아이에게 보이며 이 사람이 네 발을 잘랐는가?’하면, 아이가 모두 아니라고 하는데,
(117)오직 한덕 한덕이면 자신의 잘랐다고 하니,아이가 한덕과 귀덕에게 애 증이 있어서 그런 말을 했겠느냐!우리 나라(조선) 법률에서 10세 이하 아이의 말을 신뢰하지 말라고 하더라도,그렇다고 해서 아이의 증언을 무시할 순 없다!”보
(118)그리고 2월 21일, 중종 대왕은 신하들을 소집해 다음과 같이 전교했다.
(119)자르는 것은 잔혹한 것으로세드문 일이다.상에
(120)백성을 보살피 정사 중에는가장 먼 저 할 일 로,이같은 어린 아이를 구하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은 없다.
(121)해조에게 적절히 마련하여 음식을 그 노비 아이에게 제급하게 하라.그리고 이 아이의 일은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김귀성의 집에서 잘 보호하게 하였는데,지금은 중덕이 어미임이 밝혀졌으니 그 아이를 어미에게 돌려보내야 한다.
(122)그리고 발이 동상으로 빠진 것인지, 칼로 자른 것인지는 자세히 살피
(123)면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의술에 능통한 의원과 한성부의 낭관에게 다시 살피고 검사하게 할 것을 의금부에 이
(124)급기야 금부도사 이창무가 의원들을 데리고 가서 그 여자 노비 아이를 살펴 보게 하였고,
(125)의원들이 다 살피 고나서, 의 의원들의 진단 결과를 보고받았다.금부는그리고 승정원이 의금부의 뜻으로 중종 대왕에게 아뢰기를,
(126)”금부 도사 이창무가 의원을 데리고 가서 발이 잘린 노비 아이를 살펴 보게 하였나이다.
(127)동상으로 빠진 곳은 안팎의 복사뼈와 골(骨)가 완전하며의살은 썩어도 힘줄은 남아 있는 것인데,이 아이는 끊어진 곳이 이와 다릅니다.발
(128)복사뼈 위 정강이뼈의 부러진 곳이 날짜가 오래되어 새살이 나고 살가죽이 줄어 들었으니,이는 칼로 자른 것이 명백합니다!”
(129)이 보고에 의하면, 결국 마지막으로 아이 주웠던 귀덕이 명백한 용의자임를이 분 명 했다.귀덕은 분명 아이의 발이 동상에 의해 빠졌다고 했는데, 의원의 진단 결과(아이의 다리는 칼에 의해 잘렸다),귀덕이 거짓 증언했음이 명백히 밝혀졌기 때문이다.
(130)물론 아이의 증언이 걸리긴 했 고 중종, 역 아이가시 지 한덕이 의심스러웠기에,목한신하들에게 한덕을 형추(고문하여 심문)하는 것이 어떻겠냐며 말했다.2월 29일, 판방향이의 잘 못되
(131)김금사가 사건 자체의금부사판단하고었다
(132)새로운 보고를 올렸다.
(133)”전하… 비록 의원에 의해 아이의 다리가 칼에 의해 잘렸음이 밝혀졌지만,의원의 말을 근거로 성급하게 판단하시면 아니되옵니다.
(134)과거에 ‘유물금’이라는 자가 동상에 의해 발이 빠진 경우가 있었는데,그 발도 마치 칼로 잘라 끊어진 듯한 모양을 가지고 있었나이다.이렇듯 인간은 동상으로 발 빠지이 경는 우가 충분히 발생하는데,하물며 여린 아이의 발이겠습니까?
(135)설렁 정말 그 발이 동상에 걸려 빠졌다면, 귀덕이 악한 마음이 있어서가 아닌,
(136)치료를 잘 하지 못해 발이 빠진 것이니, 어찌 죄를 물을 수 있겠나이까.
(137)허나 의원의 말에 의하면, 그 아이의 다리가 칼에 의해 잘렸다고는 하니,일단 한덕 은 놔두고 귀덕을 계속 심문하는 것이 옳다고 사 료되옵니
(138)그러자 중종 대왕이 맞받아쳐서 말하기를,
(139)”경의 말도 일리가 없는건 아니오.
(140)허나 그 아이는 한덕이 자신 다리의 를 잘 랐다고 말했을 뿐 아니라,솜으로 입을 막은 상황까지도 분명히 말했으니,이는 비록 아이라고는 하나, 나이가 4세가 넘었는데 무슨 말인들 알지 못하고 무슨 일인들 알지 못하겠는가!
(141)혹은 무슨 원한이 있어 거짓으로 이런 말을 했겠는가?
(142)허면… 그 아이가 누군가에 의해 다른 집에 가고 나서한덕이 쫓아가 몰래 자른 것이 아니겠는가?…
(143)이 일은 경솔하게아니기에,리하면해당 부서에서만 의논하지 말 것이다.대신들을 모두 불러 의논하도록 하라!”처
(144)중종 대왕은 조선 최고의 행정 기관이었던 의정부의 대신들에게 최후의 의견을 물었다.그리하여 2월 말엽, 이 노비 아이 사건과 관련하여 3정승이 자신들의 의견을 솔직하게
(145)진솔했다.
(146)영의정 정광필
(147)”노비 아이가 말한 것 보을 한덕이 한 짓이 맞는 것 같으나,정황상 엄밀히 따져보면 한덕이 잘랐다는 것 이 분명하다고 확정지을 순 없사옵니다.단지 미욱한 아이의 말만 듣고 큰 옥사를 만드는 것은 부당한듯 싶사옵니다.면
(148)옥사는 끝까지 밝혀 내지심스러운전하! 신의 생각으론, 이러한 의
(149)해로울 것이 없을 듯 하옵니다!”
(150)좌의정 장손순
(151)”신도 이 사건을 들었나이다.
(152)신의 뜻에는 의금부의 아림이 온당하게 여겨지옵니다!”
(153)우의정 한효원
(154)”아이 말을 살펴보면, 입을 막고 발을 잘랐음이 지극히 분명하여의밖에 안 된 어린 아이가 능히 꾸며낼 수 있는 말이아닙니다.형추하여 사실을 알아내는 것이 매우 온당할 것이옵나이다!
(155)4~5세
(156)차집을 옮겨 다녔으므로 동례러그러나 여러 사람의 진술서를 보면, 여
(157)것상이걸린
(158)또한 분명한 것 같사옵니다.
(159)이런 의심스러운 옥사는끝까지추문하더라도실알지 못할 것이요,정을
(160)오히려 무고하게 죄없 는 사람이 죽을 폐단까지 있나이다.더구나 동상에 걸려 발이 빠질 수도 있는 것이옵니다.
(161)성상 전하께서 재결하소서!”
(162)결국 사건은이렇게 종결되었고, 더 이방법상없었다.이
(163)고문을 한다고 하더라도, 고문에 의한 거짓 증언이 나 올 수도그렇게 되면 사건만 더 미궁 속으로 빠질 것이다.아무튼 더 이상 뭐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있으며,
(164)석방 조치하였고,중종 대왕과 조선 조정은 그 노비 아이에게 평생 곤궁하지 않을 정도로막대한 음식과 재물을 하사하는 선에서 사건을 종료하였다.중종은귀덕을
(165)그리고 이 사건은 조선 시대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조선시대 미제사건

이미지 텍스트 확인

(1)<3줄 요약>
(2)1. 한 아이가 다리가 잘려진 채로 강 부근에서 발견됨(사건 접수)
(3)2. 온 나라가 이 사건에 집중하면서 한성부와 의금부, 승정원 등이 사건 해결에 움
(4)3. 그러나 엇갈리는 증언과 애매모호한 진술 등으로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 없었
(5)고, 조선 시대 미제 사건으로 남음

조선시대 미제사건

이미지 텍스트 확인

(1)노비새끼한거 반만이라도 조광조한테 좀 해라 시발 ㅋㅋㅋㅋㅋㅋㅋㅋ
(2)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3)근데 저시대는 시시티비 과학수사 이런게없으니까 목격자만
(4)없으면 걍 다죽여도 안걸리는거아님?
(5)추측을 해보면 “한덕이 다리를 자를 때 옆에 털모자 쓴 사람이 있었다”고 했는데 이게 아마 애 버리라고 한 한덕의 주인일듯ㅇㅇ 동상으로다리 잃은거고 애는 기억 혼란 오면서 가장 원망스러운 자신을 제일 먼저 버린 한덕이랑 그 주인 생각이 난거임
(6)ㄴㅇㅇ(125.180)

!

이 게시물에 대해 평가 해주세요!

결과 0 참여자 0

Your page rank:

리플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