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밥이 한 접시에 2피스인 이유

초밥이 한 접시에 2피스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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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동서양 가리지 않고 사랑받는 일본 음식인 초밥.
(2)그런데 대부분의 초밥집에서는 위 사진처럼
(3)작은 접시에 같은 재료를 사용한 초밥을 두피스씩 올리는게보통이다.
(4)?? 그게 왜궁금함? 원래 그런거 아님?
(5)라고 할 수 있겠지만…..사실 원래 그렇지 않았다!
(6)스시는 원래 발효음식이었다.
(7)생선을 밥으로 싸서 돌로 눌러놓으면
(8)밥에서 젖산이 나와 발효가 되어 생선이 오래 보관이 가능했다.
(9)본래 밥은 먹는게 아니라 발효 및 보관용이었다는 말씀.
(10)그러나 가마쿠라 시대부터 일본인들이 ‘ㅅㅂ 이거 밥 너무 아까운거 아님 ?’
(11)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며 발효 중간에 밥까지 한번에 먹어버리는 초밥의 초기 형태가 등장하게 된다.
(12)그렇기 때문에 초기의 초밥은 위 사진처럼 틀로 꽉 눌러서 만드는 네모난 ‘하코즈시’의 형태였다.
(13)에도 막부 시대. 참근교대제와 상업의 발달로 에도의 유동인구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14)이들에게 밥을 팔기위해 에도에는 ‘야타이’라는 포장마차들이우후죽순 생긴다.
(15)스시 또한 간편하게 먹기 좋았기 때문에 패스트푸드처럼 인기
(16)가 많았는데…
(17)문제가 있었다.
(18)생선을 발효 시키는것은 굉장히 시간이 많이 걸린다.
(19)스시를 간단하게 먹고 가려는 사람은 많은데 재료 수급은 너
(20)무 느리다는것.
(21)그래서 나온 해결책은…
(22)’밥에 식초를 뿌려서 발효된 맛을 내자’
(23)에도는 바다가까워 날생선은 무한으로 공급이 가능하니,가
(24)생선 발효 과정을 제끼고 밥에 식초를 뿌려 그 풍미만 살린것
(25)’틀에 찍지 말고 그냥 손으로 쥐어서 내버리자’
(26)비좁은 포장마차에서 틀로 번거롭게 찍을바에는 손으로 꽉쥐
(27)어서 내줘버리는것이다.
(28)이렇게 당시에는 발효 음식인데 발효도 안하고 식초로 때워버
(29)리고, 틀로 눌러야되는데 대충 손으로 쥐어버린
(30)굉장히 노근본(?음식이 탄생하는데)
(31)맛도 좋고 회전율도 좋으니그야말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
(32)지금우리아는 스시가모습으로 굳어져 버린것이다.의

초밥이 한 접시에 2피스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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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그런데 2차 대전이 끝나고……
(2)전쟁기 동안에도 부족한 식량을 조선, 타이완, 태국에서 조달하던 일본.
(3)패전 후 설치된 맥아더의 GHQ는 일본 점령 및 관리를 위한기본 지령에서
(4)”일본이 특정 수준의 생활을 유지하는데 연합국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5)라고 발표한다.
(6)전쟁을 일으킨 일본에 대한 징벌적 조치인 것이다.
(7)이로 인해 전후 일본은 전체 국민의 3분의 1이 먹을 쌀이 없
(8)쌀 값은 130배가 뛰는 식량 재앙을 마주한다.
(9)(이때 웃기게도 그 재앙의 당사자인 맥아더에게
(10)’4배 많이 먹는 재일 조선인들을 추방’하면 식량문제가 해결
(11)될 것이라 편지를 보내는 일본인들도 있었다)
(12)전쟁 말기 수송선이 씨가 말랐던 일본 답게 어선 또한 부족.근해에 방어를 위해 설치했던 기뢰때문에 어획량 또한 바닥을찍게 된다.
(13)이에 일본은 말 그대로 아사자가 속출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14)일본 정부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식량 배급 및 식당 영업에 대한 ‘긴급조치령’을 공표.
(15)식량 배급을 실시하고 배급 허가권이 실시된 식당 외에는 영업을 금지한다는 것이었다.
(16)이에 수많은 식당이 영업이 불가능했고, 메이저한 식당이었던초밥집들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17)[왼쪽이 현대의 스시, 오른쪽이 에도시대의 스시. 밥 양이 확연하게 차이난다]
(18)꼼짝없이 장사를 접게 생긴 초밥집 사장들. 그들은 꾀를 내는데…
(19)’초밥을 만들어 파는게 아니라 쌀을 가져온 사람에게 초밥 제조 수수료를 받으면 되는거 아닌가?’
(20)배급 받은 쌀을 가져오는 사람들에게 생선값과 인건비만 받고초밥을 만들어주기 시작한 것이다.
(21)음식을 만들어 파는게 아니라 손님이 가져온 쌀로 밥을 짓고,생선을 얹어서 돌려주기 때문에
(22)’요식업’이 아닌 ‘위탁가공업’이라는 무적의 논리가 생성.
(23)결국 도쿄 시청은 이 논리를 논파하지 못하고
(24)’흠…그럼 허락해줄테니까 인당 쌀 한홉으로 초밥 10개까지
(25)만 만들어’
(26)라고 제한을 두게 된다.
(27)그 전까지 주인장 맘대로의 사이즈던 초밥계가, 이 제한을 통
(28)해서 일정한 사이즈로 통일된 것이다.
(29)(쌀한10개를 만들기 위해)홉으로
(30)위에서 말했듯이 어획량도 부족해서 초밥 하나하나를 다른 생
(31)선으로 만들 수 없었기에
(32)같은 생선 당 두 피스씩을 만들어 한접시에 담았다.
(33)5개의 생선 종류로 10조각을 완성시키는것인데
(34)보통 초밥 1인분이10피스인것도 여기서 유래한것이다.
(35)1. 전쟁 이후에 재앙적인 식량 부족으로 배급제 실시, 식당 영
(36)2. 재료를 받아서 만들어주는건 요식업이 아니라 위탁가공업
(37)이지 않을까?
(38)3. 이때 1인분 10피스, 같생선 당 2피스 국룰이 정해지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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