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텍스트 확인
(1)쇠사슬 묶인 안중근…韓 사진 수집한 대만 컬렉터 “운명이었다”
(2)중앙일보 | 입력 2023.06.24 15:00 수정 2023.06.24 21:44
(3)1910년 3월 25일 조선의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고 형 집행 전에 남긴 사진.ⓒ Hsu Chung Mao Studio.
(4)사진 속에는 쇠사슬로 묶였지만 어깨를 편 채 결연한눈빛으로 꼿꼿이 앞을 응시하는 한 남성의 모습이 담겨있다. 안중근 의사가 사형 집행 하루 전인 1910년 3월25일 촬영된 사진이다.
(5)이 사진을 세상에 알린 이는 대만의 사진 수집가이자칼럼니스트 쉬충마오(徐宗懋). 그가 1910~1945년대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을모아 펴낸 『희귀사진집』이 최근 서울 코엑스에서열린 ‘2023서울국제도서전’에 소개됐다. 사진집에는안중근 의사 외에도 임시정부 당시의 김구 선생,이승만 전 대통령 등의 모습이 촬영된 사진이
(6)담겨있다. 또 치열한 항일 투쟁 속에서 역사 속으로
(7)스러져 간 평범한 이들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모두가
(8)그공개되지 않았던 말 그대로 ‘희귀’사진들이다.동안
(9)화가 사진
(10)희귀 사진집
(11)『희귀 사진집』.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Hsu Chung Mao Studio.
(12)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 Hsu Chung Mao Studio.
(13)귀한 사료(史料사진집은 도서전 현장에서도)인
(14)화제를모았다. 9만원(18정가고가만원)의
(15)도서임에도준비수40량부금세 ‘완판’됐다. 책을가
(16)구매하지 못한관람객들부이스를장한양도성식한
(17)사진이담긴 포스판매해터라도달라부탁할고
(18)정도였다고다.
(19)어쩌다대만인이 일제감정기 한국인모습에 관심을의
(20)갖됐을게까21일.이메일통해를쉬충마오에게 직접
이미지 텍스트 확인
(1)1945년 1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이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2)충칭에서 촬영한 기념사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Hsu Chung MaoStudio.
(3)1947년 4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당시 모습.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 Hsu Chung Mao Studio.
(4)1939년 조선의용대의 여군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Hsu Chung MaoStudio.
(5)쉬충마오는 무엇보다 “이 책을 만든 건 우연이 아니라운명이었다”고 단언했다. 1979년 첫 해외여행으로한국을 방문할 때 한국과의 강한 인연을 직감했다고했다. 그는 “서울의 아름다운 풍경과 한국인의애국정신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내 인생에서 한국과특별한 관계를 맺을 거라고 느꼈다”고 회고했다.
(6)강렬한 첫 인상이 사진 수집으로 이어진 건
(7)1997년이었다. 그때 처음 한국과 관련한 사진을
(8)모으기 시작했다.
(9)그는 사진집의 서문을 통해서도 그 연유를 설명했다.
(10)‘한국 근대사 재구성의 노력’이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11)그는 “지난 25년간 중국의 근대사를 담은 다수의 역사
(12)화보집을 출간했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 근대사에
(13)관련된 자료들도 필수적으로 연구하게 됐다”고 밝혔다.
(14)”근대 일본 제국주의의 대외침략 과정에서 대만이 첫
(15)번째 해외 식민지였고 조선은 두 번째 식민지로,
(16)양자는 모두 일본의 대 중국 침략전쟁의 산물이었다”는
(17)한국과 대만의 유사한 역사적 궤적이 자연스레 한국
(18)사수집으진자신을 이끌었다는 이야기다.로
(19)그“지는금일도본탄압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의
(20)고향을등질수 밖에 없었던 한국인들이 중국으로
(21)망명해 용감하게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22)자주본다”했다. “중국인들도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고
(23)공유했기때문에그들강한 연민을 느낀다”는에게
(24)1905년 서울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Hsu Chung
(25)1905년 한국의 항일운동가들을 처형하는 일본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6)1910년대 한국의항일운동가를 참수하는 일본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7)하지만 자수집은 쉽료지않가장 큰 걸림돌은았다.
(28)희귀사진을 소장하기 위한 재원이었다. 주로 사재를
(29)털어 자료를확보하는데, 늘수집하는 특을충않았다분하지한.그는
(30)“나는 오래사진된별취미가를진
(31)사업가가 아토로니다”라고했다.
(32)그러다보니 큰 결단을 해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33)“1905년 무렵 한국의 매혹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담은
(34)앨범을비해 너입에기회였고,인귀중한 한국의 원본 역사적이있는데,2만달2(약었 지 만 인그 앨을러600만원)였다.
(35)수무비싼가격생한 번
(36)뿐저축한돈으로범샀그 덕에다.
(37)사진들갖게됐다”
(38)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왼쪽)과 순종황제(오른쪽), 1910년대. ⓒ Hsu Chung Mao
(39)1905년 서울 광화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 Hsu Chung Mao Studio.
(40)1910년대 음식 등을 팔고 있는 한국 마을 아이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
(41)쉬충마오는 어렵게 수집한 수많은 사진에서 의미와
(42)가치를 발견한다고 했다. 그가 특별하게 느끼는 가치는사람는 사회에과 대 한 애 정 이 다 . 그는사람들이 땅에 뿌리내려우리는접점을 만들고,싸 살아가고, 고통 받지만 때로 짜릿함을 맛보는며감 이해하고 느을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을낄접한 한국교훈보다는 공들과도감 나누을 고뜻을 밝혔다. “누구에게도, 특히 한국다는이 책의 내용에 대해 느끼거나게요구할 권리가 없다. 그저 독자들의보라고감정을 공유 내가 배울 수 있길 기대한다”는 것이다.해
(43)‘역사공부’보다
(44)“
(45)우
(46)정
(47)독
(48)싶
(49)각해
(50)컬렉터로서 한국 자료의 가는내놨다. 앞으로 크 뛸 것이게 라쉬충마오는 “1990방문하던 일본 도쿄에년대부터있는 희귀 고서점(古 있는書店)이 중국인데,2000년대 초반부터 이 서점을 찾아 중국 관련사들이기 시작했다. 그 이후 희을격전망 조심스레도그의 생각이다.
(51)것는
(52)료자료의귀
(53)가 치솟격이최근 2년 전 까지만한국 인 최들도자료가 연 관 있이 는 만큼자료들도 거의 다 사 라지것”이라고 내다봤다.“무슨 이유에선지 한국인들은았다”면서
(54)자료런 들 사 않았다.지관련 자료들을 사고 있고, 한에는곧 한국과 관련 좋은된가격이 크게 오를고도
(55)근중
(56)는 역사가 담긴 귀중한 자료사람들이 접 수 있할 도 록 자 신 이 가공유할 뜻이 있다고 밝 혔 그는쉬충마오보다 많은를진 사진을 기꺼이두 “지고 내금
(57)다.를
(58)인사명이 됐다”고의강조했다.
(59)1910년 3월 25일 조선의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고 형 집행 전에 남긴 사진.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Hsu Chung Mao
(60)Studio.
(61)이보람 기자 lee.boram2 joongang.co.kr
https://www.joongang.co.kr/amparticle/25172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