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한국인이 살수대첩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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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별동대는 고구려군의 게릴라전술에 고전하면서 겨우 평양성 30리 지점에까지 진군하였다. 그러나 수나라 지휘부
(2)내부의 불화, 병사들이 지급받은 개인장비 및 군수품이 과중해 중도에서 몰래 버림에 따른 물자부족 등으로수군은 더 이상의 진군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3)이러한 약점은 압록강을 건너기도 전에 고구려 주장(主將) 을지문덕(乙支文德)에게 간파당하였다. 이에
(4)고구려는 그들을 고구려 깊숙이 유도해 그들의 능력을 한계점에 도달하게 한 뒤, 거짓항복을 청해 퇴각할 구실을만들어주는 척하면서 일대추격전을 전개하였다.
(5)특히, 퇴각하는 수군이 살수를 건너고 있을 때 이들을 배후에서 공격해 수나라 장수 신세웅(辛世雄)이 전사하는등 대대적인 전과를 올려 요동성까지 살아간 병력은 겨우 2,700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6)한편, 수나라 해군은 바다를 건너 패수(浿水)주 05)를 거슬러 올라가 평양성을 공격하려 했으나, 왕제(王弟)고건무(高建武)가 지휘하는 고구려 결사대에 의해 막대한 피해를 입고, 거기에다가 육군의 참패로 전의를
(7)상실하고 후퇴하였다. 이처럼 수륙양면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은 수는 요동성 공격을 중단하고 총퇴각함으로써두 번째 침략도 실패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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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둑을 이용했다는 기록은 당대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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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IS HO둑이야기는
(2)<조선상고사》에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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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API 신병주 교수의 생각
(2)둑 이야기는 적은 수의 병력으로 수나라 대군을 물리친 데
(3)특별한 사연이 있을 거라 생각해서 나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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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둑이야기가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유
(2)1 당시 기술로는 쉽지 않았던 둑 건설
(3)② 통신이 발달하지 않아 제시간에 죽을 터뜨리기 힘들었을 것
(4)3 한 번에 죽을 터뜨릴 폭약도 발명되지 않은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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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병주 교수의 생각
(2)당대 기록에 둑 이야기가 없는 걸로 보아
(3)후대에 전해진 이야기가 채록됐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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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살수 추정
(2)30만 명이 수장되기엔 좁은 청천강

잘못 알려진 거

살수대첩 = 살수 상류에 둑으로 막아놓고 수나라가 어느정도 지나가자 둑을 뚫어 수나라군을 수장시킴

-> 실제 역사서에는 둑으로 막아놓고 둑을 뚫어 수장시켰다는 말이 한글자도 안나옴

실제 역사서

실제 역사서에는 살수를 건너고 있는 수나라 군의 후방을 쳐서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남김.

식으로 적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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