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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시간..
(2)만주로드에서 만날 친일파 이종형
(3)- 의열단 가입해 남자현과 김시현을 밀고한
(4)- 해방 후 반민특위에 잡혀왔지만
(5)마지막까지 애국자라 주장한 인물
(6)반민특위 와해 후 국회의원 당선
(7)그나마 1954년 교통사고로 사망
(8)1949년 3월 29일, 밀정 이종형이반민특위 재판에 끌려와 말한다.
(9)”나는 공산당을 토벌한 애국자다. 나는
(10)독립운동의 터를 닦았다.”
(11)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지 않나? 맞다.
(12)영화 <암살>에서 이정재씨가 연기한염석진의 실제 모델이 바로 이종형이다.
(1)이종형, 영화 속 염석진과 다르지 않은 삶을살았다. 밀정짓을 하다 독립운동을 했고, 또밀정짓을 했다. 해방 후에는 반공주의자로변신해 스스로를 애국주의자로 부르며정권에 부역했다. 이러한 이유로 이미지 텍스트 확인
(2)반민특위에 끌려갔지만 끝끝내 친일과매국 행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3)불행한 점은 영화와 달리 역사에서는 그를온전히 처단하지 못했다는 것. 오히려 그는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는놀라운 결과를 만든다.
(4)이종형, 이종영이라고도 불렸다. 1948년미군정 후 우여곡절 끝에 반민특위가만들어진 뒤 화신백화점 설립자 박흥식에이어 두번째로 잡혀온 인물이다.
(1)그런데 앞서 살폈듯이 이종형은 부인할 수없는 친일행적에도 1949년 1월 반민특위특경대원들이 자신을 잡으러 오자 “내가무슨 죄가 있냐”면서 리볼버 권총을 이미지 텍스트 확인
(2)꺼내들고 맞섰다. 제압당해 결국 반민특위사무실에 끌려왔지만 그곳에서도 그는“나는 애국자다. 나를 친일파로 몰아넣다니이럴 수가 있느냐”며 “내가 풀려나는 날빨갱이와 회색분자를 모조리
(3)토벌하겠다”라고 소리쳤다.
(4)1949년 오늘, 법정에 섰을 때도 다르지
(5)않았다. 그는 “나는 만주에서
(6)공산주의자들을 토벌했을 뿐”이라고외치며 “나는 독립운동의 터를 닦은
(7)애국자”라고 주장했다.
(1)이후엔 우리가 잘 아는 그대로다. 이승만정권의 노골적인 반대 속에 1949년 6월 이미지 텍스트 확인
(2)6일 친일 경찰들의 반민특위 청사를습격으로 반민특위는 와해됐다.
(3)반민특위를 구성하던 위원들은 빨갱이로
(4)몰려 잡혀가거나 가택연금 됐다.
(5)스스로를 애국자라 칭하던 친일파
(6)이종형은 박흥식, 노덕술 등과 함께 자유의몸이 됐다. 이후 이종형은 고향인 정선에출마해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이 됐다.
(7)이종형의 행적을 알면 말도 안 되는
(8)일이었다. 알려진 악행만 따져도 한두개가
(9)아니기 때문.
(1)만주 길림성 일대에서 조선인 공산당원을 이미지 텍스트 확인
(2)토벌한다는 구실로 독립 운동가들을
(3)살해하고 밀고했다. 대표적인 것이 만주독립운동의 어머니 남자현 지사를 밀고해죽음에 이르게 한 죄다. 국내로 돌아온뒤에도 경무국 일본 형사들의 끄나풀로활동하며 무수한 독립지사들을 죽음에이르게 했다. 하지만 이종형은
(4)마지막까지도 자신의 행위가 공산당을척결한 독립운동이라 말했다.
(5)이종형은 자신의 밀정 행위를 감추기 위해1930년 의열단에 가입해 활동했다. 그것도무려 김시현 지사와 매우 가까이 지냈다고알려졌다.
(6)영화 밀정의 실제 모델이, 공유가 연기한
(7)김시현 지사다.
(1)그러나 이종형은 영화에서처럼 김시현도배신한다. 의열단 투쟁과정에서 김시현은1940년대 초반 여러 무장단체들과 힘을모아 국내진공 작전을 준비했지만 실행 전실패한다. 이종형의 밀고가 결정적 역할을했다고 한다. 이미지 텍스트 확인
(2)해방은 이종형에게 또 다른 기회가 됐다.이종형은 여운형에게 권력이 집중되는모습을 보고 건준에 가담하고자 했다.하지만 그의 실체를 안 여운형은 거절했다.이때부터 이종형은 더욱 노골적으로반공주의 성향을 띠며 해방정국에서활동했고, 대동신문을 창간해 권력의앞잡이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1)그나마 다행이라면 1954년 국회의원을 이미지 텍스트 확인
(2)역임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다는것. 이로 인해 이종형이 혹시라도 현충원에안장되지 않았을까 우려했지만. 직접이종영과 이종형으로 된 현충원 안장자를모두 취재한 결과 그의 유해가 현충원에안장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3)이종형은 사후 반세기가 지난 2002년에야국회 주도로 발표현 친일파 708인 명단에이름을 올렸다. 많이 늦은 역사의 진보다.
(4)그럼에도 오늘 다시 한번 이종형을
(5)언급하는 건, 오늘 3월 29일이 이종형의망언이 역사에 남은 날이기도 하지만시대가 시대인지라 이런 인물조차
(6)애국자라는 이름으로 칭송되지 않을까
(7)하는 우려 때문이다.
(8)결론은 투표 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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