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텍스트 확인
충무공 정 충신
1.1576년 전라도 광주목에서 천민으로 태어남
2.17세에
당시 광주목사 권율 취하로 들어감. 일반병
에
글도 올찾으나 민접하고 영리하여 권율의 총애률
받음
3.임진왜관 발발하자 권울은 선조에게 보날 장계름 전
달할 사람울 구하는데 , 노비 정씨(정 충신) 틀 제외한
누구도 자원하지 않앞음
4.정 충신은 그대로 광주에서 평안도 의주로 노빠꾸로
왜구들올 뚫고 선조에게 장계틀 전달함
5.선조가 기특하여 어명으로 그룹 평민으로 승격
이후 권율의 사위인 이항복올 스승으로 만나고, 스
승에게 글을 배우고, 스승에게 정 충신이관 이름올 밭
고, 무과에 급제함
7. 광해군 시절에는 조선 사신의 자격으로 명나라틀 방
문하고, 여진측의 동태틀 살피곤 햇음
8.스승 백사 이항복이 인목대비 폐비에 반대햇다가 유
배름 당하자 스승올 따라 같이 유배률 떠남. 이 때
사북천일록올 남김
9.이후에 국경수비률 맡앞고, 광해군이 조정 대신의
방해로 국서름 쓰지 못하자 국서 대신하는 셈으로 금
나라에 보범
10.
.인조반정 당시에 가담하지도 반대하지도 양고 전
방에서 근무함
11.이팔의 난이 일어나자 이:과의 친분올 이유로 조
정에게 의심올 받음
12.조정에서 반란분자로 의심받고, 전방에 남아있으
면 반란군의 모위m멸로 죽올 것을 생각해 성을 버리
고 탈출
13.그렇에도 도원수의 명을 받들어 묵국히 업무름 수
행하고 평안도 주요 거점울 포섭하도록 돕는 등 반란
진입에 앞장섬
14.반관 말기에 남이흥과 함께 이팔을 처부숨
15.정묘호관 때 부원수로 임명 받아 분전햇으나 이팔
의
난으로 터진 병력 손실올 극복하지 못해 활악하지
못함
16 병자호관 4년 전, 청과의 외교 단교름 반대하고 중
립 외교지 주장하다 충청도 당진으로 유배당함
17. 심한 유배가 아니라 금방 물려나고 포도대장, 경상
병마절제사흘 역임하다 병자호관 직전에 병세 약화로
타계. 향년 61세
18.충무공 시호률 내려받음
인생역전이라지만 어떻게 보면 말년 까지 반도에서 손
에 꼽히게 구른 인물 중 하나
스승이 지어준 충신이란 이름 그대로 살다간 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