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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에 의한 민립대학 설립 저지하려 일본종독부가
세운 제국대학
[이영천 기자]
역사에 ‘만약’이란 게 없젯지만, 1860년대 시작된 근대
가 우리 힘으로 이뤄적다면 어쨌올까지 늘 생각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근대는 이식든 근대워습니다:
이식든 그 길을 서울에 남아 강는 근대건축으로 찾아보
려 합니다. <편집자말>
민립대학 설립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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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올사득약 이후 일본어 교육올 통한 충량한 신민
양성이라는 동화주의와 하급 위주 인재 양성이라는 우
민화 목표록 구현할 학제틀 시행한다. 이튿 ‘수업 연한
단축, 학제와 과정의 단순화; 고등교육 유보 인문교육
보다는 단순 기능교육에 치중’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조선교육령 핵심은 고등교육 불허에 초점올 맞춘 정책
이다: 이논 짧은 학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보통학
교 4년, 고등보통학교 4년, 전문학교 2년제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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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고등보통학교(1930) 현 경복고등학교 전신인
경성제2고등보통학교의 1930년 모습이다.
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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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에서
‘조선제국대학
창립위원회(1923.11)’가
구성되다. 정무총감이 주도하는 위원회논 본토의 ‘제국
대학령’ 에 따라 종합대학인
‘조선제국대학’ 설립올 결
정한다.
첫 신입생은 문과 80명, 이과 80명이다. 모집(1924)
경쟁물은 4.7이엇고 합격자 중 조선인은 45명이없다.
하지만 곧바로 개교하지 못하다. 일본 의회 해산으로
내각이 바뀌는 시점이없다. 또한 내각은 제국대학령이
아난
조선교육령
적용올
강제한다.
명칭도
조선제
국’올 연상시컨다는 이유로 ‘경성제국대학’으로 변경올
강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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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제대 법문학부(1931년 이전) 동:동에 세워진
본과로 법문학부의 1937년 이전 모습이다.
서울역사박물관
경성제대 이공학부 1941년 설립된 경성제대 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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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모습이다. 현 서울과기대 내에 위치한다.
문화재청
한 학년 160명의 초미니 대학은 1940년까지 유지되없
고 1947년에서야 이공학부(80명)가 설립되다. 그나
마 조선인 비중은 현저히 낮아 해방 전까지 659명의 졸
업생올 배출햇올 뿐이다.
경성제대 광산학과(1942) 당시의 경성제대 광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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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건물이다 현 서울과기대 내에 위치한다.
문화재청
경성제국대학 절반 규모인 타이베이제국대학보다 예
산도 적없다. 일제는 이후 일체 대학 설립 자체틀 막아
버린다.
https://m.news.nate.com/view/20220306n104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