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여진족 박살내고 다녔던 시절.jpg

조선 초기 여진족 박살내고 다녔던 시절.jpg


조선 초기 여진족 박살내고 다녔던 시절.jpg
1491년 정체를 알수 없는 올적합이 경흥의 조산보를 포위하고 그 근방에서 약탈 충분히 하고 후퇴하면서 경원부사 나사종을 죽인 사건이 있었음

성종은 분노해서 출정을 명했는데 문제는 침입한 올적합의 정체를 알수가 없다는거임 그래서 성종은 이걸 당시 올적합중에 세력이 가장 강하고 조선을 자주 침입하던 니마차 올적합의 소행이라고 보고 2만 대병을 동원해서 니마차 올적합의 본거지인 목단강을 치기로 결정했음

그런데 2만 명이나 되는 대병을 목단강까지 동원하려면 군수 물자가 엄청 필요해서 대간들은 북정하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고, 정체를 알수 없는 올적합이고, 너무 머니까 그냥 치지 말자고 했음

하지만 성종은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북정을 결정했는데 2만 대병을 동원해서 목단강으로 가다가 전투가 벌어졌는데 여기서 조선이 승리함

그리고 목단강에 도달하자 정작 니마차 올적합이 모두 도망친 것을 발견함 그래서 바로 회군했는데 별 성과없이 돌아오다 올적합 200기와 다시 전투를 벌이는데 여기서 다시 조선이 승리함 성과는 미미했지만 그래도 조선을 공격하던 니마차 올적합을 공포에 질리게 했다는것 정도는 성과라고 볼수 있음

근데 문제는 조선을 공격한 올적합의 정체가 니마차 올적합이 아니라 도골 올적합으로 뒤늦게 밝혀짐

대간은 성과도 없는 북정이니 군공 취소하라고 날뛰었고 성종은 그 뒤로 그전만큼 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는 없었음

결론적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둔 북정이었으나 2만 명이라는 대병을 동원해서 굳이 쳐들어가야 했나? 라는 생각이 드는 원정임 그냥 소수의 정예한 경기병으로 도골 올적합인지 확실하게 알아보고 쳤거나 아예 외교적으로 해결했으면 대간도 욕하진 않았을거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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