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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언제였더라 코로나가 터지기 전이었을 거임. 아무도 마스크를안 썼었으니까.
(2)강남 스벅에서 와이프를 기다리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쪼압쪼압 빨고 있는데 대각선 방향에 아주 잘생긴 젊은이가 앉아 있었음. 모델인가 싶을 정도로 키도 커 보이고 얼굴도 작고… 내가 남잔데도 아 고놈 잘생겼다… 하면서 눈이 가더라. 나 말고도 주변에서 남녀 가릴 것 없이 슬쩍 슬쩍 그 남자를 쳐다보는게 느껴질 정도였음.
(3)그런데 갑자기 웬 예쁜 여자가 그 사람 앞에 와서 탁 앉는 거임.맨 처음에 여친인가 싶었는데, 남자가 여자를 흘끗 보더니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4)”저 아세요?”
(5)하더라. 그랬더니 여자가
(6)”아니요, 제가 그 쪽에 좀 관심이 있어서요.”
(7)그 순간 그 테이블은 더이상 평범한 스벅 테이블이 아니라 수많은 관람객의 눈귀가 쏠린 무대였음… 안 보는 척, 안 듣는 척 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모두들 서로가 관객임을 알고 있었지. 우리의 주연 배우는 무슨 말을 할까… 이 극의 엔딩은 무엇일까…클라이막스를 향하는 하나의 소극장이었던 거임.
(8)남자는 아무 말 않고 자기 앞에 앉은 여자를 쳐다 보더니 왼손으로 커피잔을 들어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음.
(9)아, 거기서 우리는 보고야 말았다. 왼손 약지에서 빛나는 반지를! 멋 없는 대사 보다는 일부러 왼손을 들어 반지를 보이는 세련된 거절을!
(10)그런데… 임자 있는 남자를 유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을까? 여자는 분명히 그 반지를 봤음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음. 끈질긴 여주인공… 아직 클라이막스는 오지 않았던 거임.
(11)그 때 남자는 결정적 대사를 날렸다.
(12)”그냥, 관심만 가지세요.’
(13)그리곤 무심하게 핸드폰을 꺼내 두드리기 시작했음. 남자는 여자에게 다시 눈길을 주지 않았고 결국 여자는 자리를 떴다.
(14)크… 한 편의 짧은 단막극을 감상한 우리는 여자가 자리를 뜨고남자마저 가게를 나섰음에도 관객의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방금 일어났던 사건을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곱씹었음. 아무도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우리 모두 같은 여운에 잠겨 있음을 알고 있었지.
(15)잠시뒤 와이프가 도착해 내 앞에 앉았음. 나는 다리를 꼬고 목소리를 깔며 “저 아세요?”라고 물었지만
(16)와이프는 “뭐래 짜증나니까 아이스라떼로 사와.”라고 답했지.호다닥 라떼를 사러가는 내 뒤로 주변의 테이블이 모두 뿜는 소리가 들렸지만, 관객이 아니었던 와이프는 아직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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