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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누리 대신 ”경기북도”가 근본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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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세종실록 76권, 세종 19년 1월 22일 임자 3번째기사/경기의 각관·전에서 올리는 반찬을 정지시키다
(2)또 폐단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그만둘 수 없다면 다만 경기 남도(京畿道)의 풍년이 들지 못한 각 고을만 바치지 말도록 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한도내에서 이렇게 분별할 수는 없다. 하고, 드디어 명하기를, “문소전(文昭殿) 이외에, 경기에서 각전과 각관에 바치는 반찬은 모두 바치지 말게 하고, 오직 각포(各浦)에서는 예전대로 하라.” 하였다.
(3)2. 세종실록 76권, 세종 19년 2월 9일 기사 4번째기사 / 흉년의 피해 상황과 진휼 상황
(4)작년에 봄·여름이 가물어 시내와 우물이 모두 말랐다. 경기남도(京畿南道)와 동남쪽의 네 도가 모두 농사를 실패하였는데, 충청도가 더욱 심하고, 경상·전라 두 도는 바닷가의 두어 고을이 조금 결실되었다. 대개 경기도는 40읍 중에서 수원과 용인 등 아홉 고을이, 충청도는 54읍 중에서 임천과 한산 등 18읍이, 전라도는 55읍 중에서익산(山)과 용안(安) 등 11읍이, 경상….

약 700년 전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세종대왕 이도

시절 경기북도/경기남도 처음 사용된 바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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