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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용두산 대화재
이 화재로 조선시대 대부분의 왕의 어진을 포함해
약 3500여점의 문화재가 한줌의 재가 되어버림
심지어 유물 목록조차 1960년 창덕궁 방화사건으로 불타서
무슨 유물이 유실되었는지도 알수 없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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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9동 1201호 2024-03-29/3242:47 5
(2)가장 안타까운 화재는 나에겐 씨랜드 화재임… 아이들 수십 명이 말도 안 되게 죽은 데 비하면 어진이이동
(3)고 뭐고 그냥 물건일 뿐… [9]
(4)■추천 답글
(5)곤색자일리톨 2024-03-29 219 1
(6)하…식민지도 아니고 전쟁도 아니고 이게 무슨 [4]
(1)LDI 프르니 2024-03-29 01:04:38 이미지 텍스트 확인
(2)문화대혁명만큼이나 너무 안타까움…..
(3)■ 추천 신고
(4)LD, 고등어생크림 2024-03-29 21:15:52
(5)6.25 전쟁때문에 피난가서 터진일이라… 따지고
(6)보면 전쟁때문이 맞긴 함….
(1)불어 dagdha 2024-03-29 21:17:42 이미지 텍스트 확인
(2)열쇠保管問題로 옥신각신
(3)[부연설명] 6.25 전쟁 직후인 1954년 12월 26일 새벽주민의 실화로 부산 용두산 일대에 발생한 대화재. 용두산 인근의 가건물에서 발생한 화재가 강한 계절풍을 타고 번져서 용두산 동남쪽 일대의 피난민촌 300여채를 전소시킴.(판잣집 2층에서 살던 어떤 여자가촛불을 켜놓은 채로 잠이 들었는데 이 촛불이 떨어지면서 화재가 발생함. 이후 이 여자는 구속되었다고함) 이 화재로 사망 1명, 1,4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함. 문제는 이 화재로 6.25때 피난시킨 궁중유물을 임시 보관하고 있던 관재청 창고가 불에 타 버린 건데,보관중인 4,000여점의 문화재 중 3,500여개가 복원불가능할 정도로 소실됨. 더 웃긴건 이당시 문화재를지키고 있는 경찰관들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창고 열쇠가 없어서 불타는 것을 지켜봤다고 함. 화재 후에이 열쇠를 누가 가지고 있었냐는 내용을 가지고 문교부와 구 황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일도 있었음.당시 화재로 고전악보, 궁중악기, 조선왕조 어진 등의유물을 모두 잃게 되었는데 광복과 6.25로 문화재를관리할 인력과 예산이 없어서 기본적인 보존은 커녕사진도 찍어 놓지 못해서 역사적 유물을 영원히 잃게됨.
(4)LD 떡을내뿜게 2024-03-29 22:41:21
(5)자국 문화유산도 제대로 못 지키면서 문화강국은
(6)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