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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식품이었던 생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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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대략 1980년대의 일로 기억합니다.

국내에서 방영된 어느 미국 tv 드라마에서 미국인 대학생이 일본계 이민자의 집에 초대되어 그날 식사로 나온 생선회를 실컷 먹고 있는데, 이 음식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물어보자 “살아있는 날 생선의 살”이라는 대답을 듣고는 기겁을 하여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를 잡고 토악질을 하던 장면이 분명히 나왔습니다.

이 장면에서 엿볼 수 있는 내용은 생선회가 구토를 일으킬 만큼, 혐오식품에 속했다는 사실입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맛있는 생선회의 사진들…. 그런데 이 생선회가 과거에는 혐오식품이었다니요?)

수백 년이 넘게 동양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소설 삼국지연의를 보면 진등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중국을 셋으로 갈라서 지배했던 조조, 유비, 손권에 비하면 별 볼일 없는 사람이지만 처세를 잘해서 여포와 유비와 조조가 잇달아 지배권을 다투었던 서주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조조로부터 광릉 태수라는 벼슬을 얻어 말년을 편안하게 보낸 이력이 있었습니다.

진등이 태수로 읻었던 광릉은 현재 황해(서해)로 흘러들어가는 강인 회수의 남쪽에 있는 도시인 양저우인데, 이곳에서는 강에서 잡히는 생선들을 재료로 하는 생선회가 주된 요리였습니다. 진등은 민물고기로 만든 생선회를 즐겨 먹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속이 답답하고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으며 얼굴이 붉어지고 뱃속이 더부룩한 병에 걸려 고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민하던 진등은 당대 유명한 의원인 화타를 불러 진찰을 부탁했는데, 화타는 진등의 눈과 혀를 살펴보고 약을 지어서 먹게 했고, 그대로 진등이 약을 먹자 구역질이 나 요란하게 토악질을 했는데, 놀랍게도 머리가 붉고 꿈틀거리는 벌레가 잔뜩 나왔다고 합니다. 진등은 민물고기로 만든 생선회를 먹었다가 기생충에 감염되었던 것이죠.

삼국지연의에서는 화타가 진등한테 “앞으로 몸을 더 오래 보존하고 싶으면 비린 생선을 먹지 마십시오.”라고 충고했지만, 3년 후에 진등은 똑같은 병이 재발해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아마 진등은 화타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계속 생선회를 먹다가 기생충에 감염되어 죽고 말았던 듯합니다.

또한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했던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돕기 위해 파견된 중국 명나라의 군사들은 조선 사람들이 생선의 살을 날로 먹는 장면을 보면 “구역질이 난다.”라고 비웃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렇듯 생선회는 과거에 혐오스러운 식품으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혐오식품이었던 생선회가 지금은 왜 고급스러운 미식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일까요? 이는 간단한 이유인데, 생선회를 즐겨 먹던 일본이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면서 버블 경제로 대표되는 경제 부흥에 성공하여 엄청난 부를 쌓게 되자, 그런 경제대국인 일본의 식문화 중 하나인 생선회가 고급스러운 요리로 이미지가 바뀌어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생선회를 먹게 되면서부터였습니다.

tv 드라마에서 생선회의 정체를 알고는 구역질이 난다며 구토를 하던 미국인들이 이제는 서투르게나마 젓가락질을 배워서 생선회를 먹는데 여념이 없으니, 문화의 높고 낮음이 영원히 고정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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