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문 발명의 계기가 된 최악의 압사 사고

비상문 발명의 계기가 된 최악의 압사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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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83년 6월 16일
(2)영국 선덜랜드의 빅토리아 홀
(3)마술사 극단 ‘미스터 앤 미스 페이’ 가 펼치는 마술쇼가 열렸다.
(4)마술쇼를 보기 위해 어린이 2,000명이 모였고, 아이들은 마술공연을 관람했다.
(5)공연이 끝나고 아이들에겐 사탕과 장난감(위의 사진)을 나눠줬다
(6)그런데 공연자들 팔 힘에 한계가 있다보니 장난감이 멀리까진안닿았고
(7)공연장 2층, 3층에서 구경하던 아이들은 장난감을 받지 못하자
(8)장난감을 놓치기 싫어 밑 층으로 달려갔다.
(9)문제는 당시 아이들을 한명 씩 올려 보낸다고 계단 쪽 문을 50c
(10)m만 열어두고 못으로 고정했었는데
(11)이게 아이들 수백명이 동시에 내려갈 땐 오히려 방해가 됐다.
(12)아이들은 좁은 계단 틈 사이에 막혔고, 몇명이 넘어지고 그 위
(13)로 다른 아이들이 넘어졌다.
(14)계단이 순식간에 아이들로 막히자 관계자들이 빨리 달려와 막
(15)은 문을 부수고 아이들을 구출했으나
(16)183명은 사고로 압사해버렸다.
(17)사고는 영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압사한 사례로 남았다.
(18)또 이 사고는, 갑자기 많은 사람이 빠져나갈때를 대비한 장치인
(19)비상문이 발명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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