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치매야..

(1)오늘 어떤 일이 있었냐면
(2)엄마가 샤워를 하시는데 굳이 새 바디워시를 쓰고싶으셨나봐
(3)치매 초기 진단 받으신 후에 자꾸 새것에 집착하시거든
(4)그래서 내가 추석때 직장에서 받아온 샤워 세트를꺼내셨나봐
(5)근데 다 비슷한 용기에 영어만 달달 적혀 있으니 엄마는 그냥 아무거나 꺼내서 샤워볼에 쭈욱 짰어
(6)근데 그게 바디로션이였던거야
(7)엄마는 그것도 모르고 왜 거품이 안나지? 하면서욕실에서 발가벗은채로 로션 한통을 다 짜냈더라
(8)일 끝나고 집에 왔는데 꼴이 저거였어
(9)욕실 바닥엔 물이랑 로션 섞여서 난장판이고엄마는 발가벗고 추워서 입술이 파래져서 나보고
(10)이거 이상하다는거야 거품이 안난다고
(11)순간 너무 짜증나서 엄마 뭐하는거냐고 로션이랑바디워시도 모르냐고 막 짜증을 냈어
(12)일도 힘든데 엄마까지 이러니까 진짜 미치겠어서엄마 손에 들린 로션통 확 뺏어서 쓰레기통에 쳐넣고 진짜 거친 손놀림으로 엄마 씻겨서 나왔어
(13)아빠랑 오빠는 일 끝나고 집에 와서 분위기 이상하니까 그냥 엄마 하루일과 물어보고 씻고 방에 들어갔고
(14)엄마가 아직 초기 증세라 온가족이 돈 바빡 벌고 있거든
(15)엄마는 딸인 나한테 많이 의지해
(16)당신 벗은 몸 아빠나 오빠 한테는 절대 안 보여주시려고 해 자꾸 니들 나가고 내 딸 데려오라 그러시거든
(17)나는 그게 정말 고마웠는데 오늘은 짜증나더라
(18)왜 하필 나만 또렷해서 나만 이 수발을 다 들어야하나
(19)근데 또 생각해보니까 우리 엄마잖아
(20)엄마 아파서 그런거잖아
(21)그래서 자기전에 엄마 화내서 미안해
(22)하니까 엄마가 왜 미안해? 왜 미안해?
(23)이러는거야 그래서 내가 엄마 아까 화냈잖아 그래서 너무 미안해
(24)하니까 엄마가 아니야 화낸적 없어 ㅇㅇ이가 밥도
(25)먹여주고 재워주고 다 하잖아 엄마가 귀찮게 해서미안해
(26)딱 그말듣는데 내가 존나 못된년이구나 싶더라
(27)엄마는 나 어릴때 똥기저귀 다 갈아주시고 밥 챙겨
(28)주시고 아프면 간호해줬는데
(29)나도 그거 그냥 똑같이 해드리면 되는건데
(30)뭐가 힘들다고
(31)우리 엄만데
(32)나 낳아주고 이쁘게 길러준,
(33)우리 자식 키우느라 너무 힘들고 지쳐서
(34)일찍 애기로 돌아간거라는데 나는 그게 뭐가 짜증
(35)엄마한테 짜증을 냈을까 싶더라
(36)솔직히 엄마 치매 점점 심해지는데
(37)눈 딱감고 엄마랑 뛰어내려 볼까 가스 밸브 끊어볼
(38)생각 많이 했다
(39)근데 오늘 엄마가 나한테 하는말 듣고 진짜 많이 울
(40)엄마는 내가 당신한테 짜증낸건 다 잊고 내가 가끔
(41)가다 잘해드린것만 반복해서 말씀하셔
(42)엄마는 억지로라도 나를 착한 딸로 만들고 싶었나
(43)엄마는 여전히 아빠 오빠는 멀리하는데 나만 찾아
(44)그래서 잠도 나랑 잔다
(45)분명 엄마는 내옆에서 주무시는데
(46)왜 자꾸 겁이 날까
(47)이러다 나도 잊어버리시면 어쩌지
(48)기억의 일부분이 지워진 지금도 나는 너무 벅차고
(49)엄마가 나까지 잊어버리면 진짜 어떡해야 하지…
(50)지금껏 잘 참아왔는데 오늘은 너무 힘들다
(51)진짜 너무 힘들어
(52)왜 하필 우리 엄마 기억을 훔쳐 갔는지…너무 밉다
(53)그냥 힘들어서 익명의 힘 빌려 털어놓고 갈게
(54)내일부터는 다시 힘내서 엄마 웃게 해드려야 겠다
(55)꼭 그렇게 해야겠어
(56)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57)속이 좀 풀리는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