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중고교 수업시간에 ‘나는 앞장서서 친일파가 될 것이다’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진다는 친구 선생님들의 증언(혹은거기다 뭐라 답변할지에 대한 상담요청)이 심심찮게 들어오는데, 이미지 텍스트 확인
(2)다른걸 다 떠나서 ‘친일파 앞잡이로 부귀를 누리는 일’을너무 간단히 아는 것 아니냐는 걸 지적하라고 말하곤 한다.
(3)오후 3:14 2020년 12월 3일 – Twitter Web App
(4)1천 리트윗 60 인용한 트윗 544 마음에 들어요
(1)평시 commoncitizen01 12월 3일 이미지 텍스트 확인
(2) commoncitizen01 님에게 보내는 답글
(3)아무나 ‘제가 친일파 할래요’ 한다고 (심지어 보상까지 두둑한) ‘친일파’ 타이틀을 달게 해 줄만큼 일제/총독부 관리들이 바보는 아니구요.. ㅠㅠ
(4)’친일파’ 선택은, 사실 ‘가만히 있어도 대 성공을 거둘 역량이 있는 사람’이, ‘그성공의 포텐셜을 모두 포기할 수 있느냐’의 선택지에서 나오는 것…
(5)평시 commoncitizen01 – 12월 3일
(6)그 의미에서, ‘의병/독립운동’ 조차도 (당연히 이상을 위한 투쟁적 성격이 있겠지만..), 1등시민이 될수 없다는 울분에서 나온 일종의 ‘베팅’ 측면도 없지는 않은 것이겠지 내심 상상해 왔다.(물론 일단은 상상)
(7)평시 commoncitizen01. 12월 3일
(8)어쨌거나, ‘친일파 인생역전’이란걸 하기 위해서는(고등문관시험 합격의 초엘리트가 되거나//주변 친구 친지들을 사상범으로 거짓고발하는 파탄적인 수법까지 포함해) ‘네가 제국을 위해 뭘 바칠 수 있니?’라는 당연한 질문을 받게된다는 것….
(9)세상에 공짜란게 없는 것이다.
(10)이런저런 반응이 있어 그 취지를 부연하면,
(11)1) 현재 중고교 역사교육에는 ‘친일=부귀 vs 독립운동=양심’을 저울 위에 올리는 듯한 접근이 은근히 있는데, 이는 적어도 공교육에서 다양한 층위의 학생에게 설득력을 얻기는 어렵다. (역사상의 복잡다단함을 가르치는 건 오히려지나치게 심화된 영역)
(1)평시 commoncitizen01 12월 3일 이미지 텍스트 확인
(2)2) 따라서 단순하게, 질문을 좀 바꾸어 보자는 것이다. “양심을 버리고 부귀를얻는 행위는, 과연 간편/편안한 길이기만 한 것인가”
(3)일단 ‘양심을 높은 가격에 판매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현재와 마찬가지로 여러 ‘스펙’을 요구받는게 당연하다.
(4)평시 commoncitizen01-12월 3일
(5)3) 능력이 있든 없든, 내가 가진 능력 이상으로 이를 고가에 판매하고 싶어졌다면, 이제는 양심을 ‘좀 많이’ 팔아야한다.
(6)이 트윗에서 말한, ‘주변 친구 친지들을 사상범으로 거짓고발하는 파탄적인 수법’같이, 정말 인간적인 삶 모두를 판매하는 경우가 그 극단적 경우,
(7)어쨌거나, ‘친일파 인생역전’이란걸 하기 위해서는(고등문관시험 합격의초엘리트가 되거나//주변 친구 친지들을 사상범으로 거짓고발하는 파탄적인 수법까지 포함해) ‘네가 제국을 위해 뭘 바칠 수 있니?’라는 당연한 질문을 받게 된다는 것…
(8)세상에 공짜란게 없는 것이다.
(9)이 스레드 보기
(10)평시 commoncitizen01. 12월 3일
(11)4) 그 (a)’양심을 능력으로 교환하는 것 조차 간단하고 편안치만은 않음’이 충분히 납득되면,
(12)그 다음 단계인 (b)’사실 올바른 삶을 산다는 것이 비단 손해보는 인생이기만한 것은 아니다’를.. 그걸 넘어서면 최종 단계인 (c)’눈앞의 이익보다 나아간 공적 정의의 실천’에 대해 말해봄 직 한 것이다
(13)5) 즉 그 (c) 단계가 너무나도 영웅적으로 성급하게 포장되어, 학생은 물론 교사 개개인에게까지 숭고하게 공유된 탓에, 많은 사람들에게 ‘숭고함을 추구하느니 생활을 택한다’는 말로 ‘친일’에 감정입하게 되는 것 아닌가..
(14)그런 취지의 일종의 단계론을 말하고 싶었다/完
(1)까날(오승택) kcanari 12월 3일 이미지 텍스트 확인
(2)전에도 트윗했지만, 친일파는 고사하고 그저 황국신민으로 살고 싶었을 뿐인데 일제가 도저히 사람 취급을 안해줘서 독립투사가 된 분이 이봉창 의사…
(3)황국 신민 된 도리로 덴노 용안 한번 보러 갔다가 불심검문에서 한글로 된 편지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며칠 동안 구금 당하면서 깨닫게 됨.
(4)까날(오승택) kcanari – 12월 3일
(5)내가 아무리 조선을 버리고 일본인으로 살고 싶어도 일제가 나를 일본인으로인정해 주지 않는구나.
(6)이때의 경험을 살려 임시정부의 무장투쟁 노선을 이끌어 내게 됨.
(7)이 스레드 보기
(1)예비 대머리 담륜 sldn1206.12월 3일 이미지 텍스트 확인
(2)폭트가 길어졌는데, 마지막으로 한 피래미(?) 독립운동가의 진술조서를 올려봅니다.
(3)이들을 독립운동으로 내몬 조선사회의 현실은 어땠는가? 역설적으로 이만큼열악하니 1930년대 일제의 확장과 떡고물에 얼마나 사람들이 뒤집힐만했나를 동시에 보여준다고 봅니다.
(4)운 조선혁명당에 가입한 동기를 말하라.
(5)부동하다가 소화에 부친이 사망하여 부친의 부채를 정리하니.으로 왔다 와서는 에서 약 – – 안전부 소비했으므로, 모친은 나주(먼지 미상)에 사는의 집에 소화신세를 지고 있으나, 모친은義(번일까지로 갔는데 모친도 있었다. 그런데 모친은 에서 생활이 곤란했기 때문에-ht번지에서번지로 전격한 사실을 말하고 누이를 판번지미싱)에 방 하나를 빌려서 떡장사를 시작하고 나는은 집을 계속할 수 없게 되어, 모친은 누이데리고 약간의 소를에 부친이 강제조업을 할 당시에 거래관계가 있었고 그 뒤에도 계속개중에는 부친의 유산으로 힘이 약 한명이 있는 것을 원에 당해서으로 가보니 모친은 감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아한 여관에 있다가 모친은 누이를 데리고 하녀가 되었고, 나는 주으므로수리조합 공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춤을 출발하여빙이 되어 공사가 좋지되어서 으로 가서 질소회사 해운게임무로 소화경유해서 으로 가서 약-일동안 뗏목 끌어올리는 일을 하그 인부 중에 조선혁명당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있어서 마침내 나도 혁명
(6)담 내가 조선혁명당에 가입하게 된 동기는 내가 -A세 때한 관계로 자연 사상운동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八회가 모순되어 있는 것을 깨닫고, 자본주의 사회를 저주하게 되었끝에 자포자기하게 되었고, 현재의 사회조직에 대해서는 더욱 불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그리고 도로공사인부로 일하고 있는하고, 자기들이 당시 살고 있는 부근에 조선혁명군 제증대에명 미상)을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모는 자기도 함께 혁명하면서 알선해 줄 것을 부탁했었다. 그때 그 사람이 말하기를이라는 조선에서 연장과 같은 역할을 가진 라는 사람이 외도 자유롭게 활동할 입장에 있으니 꼭 알선해 달라고 부탁했었다고 혁명당 본부로 간다고 했다. 도중 리쯤 갔을 때하여 환영화를 연다고 우리들 외에 부락민 -명정도 불러서 연호의 안내로 출발하고 가 있는 곳에서 다시 그당에 입당했었다.
(7)예비 대머리 담륜 sldn1206. 12월 3일
(8)요약 : 중등교육 받으면 배운 사람 취급받던 시대에 중등교육 받고, 작은 가게와 1만평 임야를 상속받을 수 있던 이도, 파산하여 여동생은 기생이 되고, 남동생은 절도죄로 깜빵가서 가족이 무너지고, 자신은 만주로 건너가 날품팔이가 되어 이 꼴로 사느니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되었다는 내용.
요약 : 일제도 어느 정도 검증된 엘리트들을 기용했기 때문에 친일파는 개나소나 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