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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대 희생자가
(2)발생하지 않도록 해라.
(3)경찰 희생자가 있더라도
(4)일반 시민 피해가 없도록 해라.”
(5)“주동자 외에는 연행하지 마라.
(6)특히 교내에서는 연행하면 안 된다.
(7)경찰봉 사용 유의해라. 반말과 욕설을 쓰지 마라.
(8)주동자 연행시 지휘보고해라.
(9)그들이 식사는 거르지 않는지 신경 써라.”
(10)사진출처 뉴시스
(11)시위 현장에서 외친 이 명령은 애석하게도’그’가 숨진 뒤에야 세상에 밝혀졌습니다.바로 1980년 전라남도 경찰국장이었던안병하 경무관입니다.
(12)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는 신군부의 정치 개입과
(13)비상계엄을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14)그곳에 안병하 경찰국장도 있었습니다.
(15)신군부는 광주 경찰에게
(16)시민들을 향해 발포하라고 명령했습니다.
(17)”반항하는 것들은
(18)다 잡아와!”
(19)”상대는 우리가 생명과 재산을
(20)보호해야 할 시민인데
(21)경찰어떻게 총을 들 수 있느냐.”이
(22)안국장은 오히경찰들로부터려
(23)총기를 회수했습니다.
(1)안국장이 끝까지 이미지 텍스트 확인
(2)시민의 안전을 지키려 했지만
(3)신군부는 계엄군을 투입했습니다.
(4)시민과 학생을 죽도록 때렸고,
(5)임신부에게도
(6)방아쇠를 당겼습니다.
(7)수많은 시민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8)안국장과 광주 경찰들은
(9)상처 입은 시민을 치료하고밥과 옷도 제공했습니다.
(10)”안병하를 직무유기 및지휘 포기 혐의로체포한다!”
(11)5월 27일 광주 민주화 운동이 종결된 뒤안 국장은 보안사에 끌려갔습니다.
(12)그는 모진 고문을 받았고,
(13)강제로 경찰직을 내려놔야 했습니다.
(14)결국 고문후유증에 시달리다
(15)1988년 10월10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16)*사진출처 안호재 씨 제공
(17)안국장은 육군사관학교 8기 졸업생이었습니다.
(18)만약 신군부 편에 섰다면
(19)손쉽게 부와 권력을 누릴 수 있었을 겁니다.
(20)하지만 그는 시민의 편이었습니다.
(21)사진출처 안호재 씨 제공
(22)가족들은안병하 경무관의 명예 복권운동을 벌였고,
(23)결국 2005년민주유공자이자
(24)순직경찰로 인정받아
(25)국립현잠들게 됐습니다.충원에
(26)고문과강제 해직그의 말년은 비참했습니다.
(27)하지만 권력과 시민 중
(28)시민의 편에선진정경찰로한
(29)그는 영원히기억것될입니다.
(30)기획하대석 구성 성지혜 인턴 그림 장익재
https://namu.wiki/w/%EC%95%88%EB%B3%91%ED%95%98
5.16 쿠데타 당시 안병하에게도 국가재건최고회의 참여 제안이 있었으나 안병하는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이분은 참군인이자 경찰 이셧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