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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보 최초 영구결번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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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86년 8월 15일 경기도 고양군 송포면[5] 법곶3리 앞의 한강 하류
(2)에서 익사체가 떠내려 오는 것을 부근 경계 초소의 초병이 발견하였다. 경찰 수사 결과 익사체의 신원은 김영신으로 판명되었고 성적 부진을 비관하여 스스로 강에 몸을 던진 자살로 결론을 내렸다. OB 베어스 측은 김영신의 영결식을 치르고 그를 애도하는 의미에서 김영신의 등번호 54번을 KBO 영구 결번 처리하였는데,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KBO 영구 결번 사례다. 최고의 유망주였으나, 주전 경쟁에 밀리며 자신의 성적과 신세를 비관해 자살로
(3)생을 마
(4)감한 비운의선수.[6]
(5)|초병이 발견 시체를
(6)금품이 들어있었다.에는 주민등록증과 약간의바지차림이었고 바지주머니뒤 경찰에 신고했다.내려오는것을 육군소속 金榮伸선수(6·2군하류에서 프로야구 OB베어양군송포면법곶3리앞 한강15일 5시쯤 경기도고소속 포수)가 익사체로 떠
(7)선수는 T셔츠와 초록색
(8)인양
(9)부대
(10)한金榮 선수
(11)김영신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신문 기사.
(12)만약 당시에 트레이드가 활성화됐다면 OB가 아닌 다른 팀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텐데[7] 불행하게도 당시에는 트레이드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시절이었고[8] 선수가 스스로 트레이드를 요청하거나 선수의 진로를 열어주기 위한 트레이드가 이루어진 사례도 매우 드물었다. [9] 결국 김영신의 비극적인 죽음은 리그 내 선수 트레이드 활성화로 선수 활로 모색의 필요성을 일깨워 준 사건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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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두산 베어스 No.54

김영신 선수

당시 ob베어스 포수 유망주 였으나 김경문, 조범현 등에 밀리고 출전을 못하자 성적과 신세를 비관하여 자살..

이를 추모하기위해 등번호였던 54번을 영구결번으로함

당시 트레이드라는 제도의 사례가 별로 없었지만 이 일을 계기로 트레이드가 활성화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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