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편의점 운영한 썰.jpg

북한에서 편의점 운영한 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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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FamilyMart 미리마트
(2)Family Mart 훼미리마트
(3)학교통정보센터
(4)난 편의점 점장이었다. 편의점은 개성공단 내에 있었다.북한 유일의 편의점이다. 신입사원이던 2008년 10월부터 약 8년 동안 이 편의점을 맡았다. 2004년 12월 개성공단점을 시작으로, 2013년 4월 문을 연 개성공단지원센터점까지 총 3개 점포를 담당했다.
(5)’북한 편의점 점장’이란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일단한 달에 두 번 주말에 남한으로 나오는 것 외엔 개성공단내 숙소에 머물러야 했다. 남북 합의에 따라 스마트폰처럼 사진과 영상을 기록할 수 있는 기기는 사용할 수 없는곳이다. 남한의 가족이나 친지와의 연락은 모두 사전에허가된 회사 유선전화로만 해야 했다. 국제전화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은행거래도 인터넷 뱅킹이 아니라,폰 뱅킹으로만 가능하다. 업무 전화 등을 합쳐 한 달 전화비만 80만원가량이 들었다. 신문이나 잡지 반입도 어려웠다. 그래서 주말에 남한에 나올 때면 ‘휴가 나오는 군인’같은 기분이었다. 북한에서 일하는 대신 회사에선 ‘기타수당’을 더 챙겨줬다.
(6)점포에서 나를 비롯, 남자직원 둘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북한 근로자였다. 점포 3곳을 합쳐 9명의 북한 사람이우리의 동료였다. 근무는 오전 9시쯤 시작해, 오후 11시면 끝이 났다. 북한 직원들도 오전 9시면 출근했다.
(7)북한 직원들은 한 달 70달러 정도를 급여로 가져갔다. 개성공단 내에선 편의점이 인기 직장이라고 했다. 하지만
(8)그들은 6개월~1년 정도 근무한 뒤 “○○일부턴 다른 사
(9)람이 나온다”고 일방 통보하고 모습을 감췄다. ‘왜 그만둬
(10)야하는지’, ‘가는지’ 등은 묻지 않는 게 그곳에선어디로
(11)불문율이었다.
(12)점포에선 술과 담배 등을 합쳐 700여 가지 제품을 팔았
(13)다. 한국 일반 점포의 3분의 1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14)인‘터넷이않다 보니 일일이 상품 코드를 따로 입터지지’
(15)력해야 하등 번거로움이 많았다. 원화도 안 받고, 신용
(16)카드도 사용할 수 없었다. 물건은 오로지 달러로만 팔았
(17)다. 편의점 고객남한 관리자들이 많이 찾았지만 북한은
(18)근로자도 적않았다. 팔아야 할 상품은 매일 오전 경기지
(19)도양주물시의배송됐다.류센터에서
(20)북한 근로자에게 인기 상품은 단연 코카콜라와 초코파이,
(21)신라면이 꼽혔다. 또 아이스 커피류가 하루 100잔 이상
(22)팔렸다아.스커피는 ‘얼음’ 자체가 귀했고, 흔하디흔한
(23)일회용 플컵이 그곳에선 ‘레어템(드문 아이템)’으라스틱
(24)로 통했기 때문이다나름 ‘자본주의의 맛’이랄까. 편의점.
(25)은또 남한사람들에힐링의 공간이었다. 북측 근무자겐
(26)들에게는반대로남한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었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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