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손자가 육군사관학교 면접에서 들었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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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나는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육사에 가서 구술
(2)시험을 봐야 했다. 이때 필요한 서류가 추천서였다. 정부의 국장급 이상 공무원이나, 군 장성의 추천이 필요했다. 나는 아버지의 동지이며 광복군 출신인 민영구제독과 김관오 장군의 추천서를 받았다.
(3)면접관은 생도대장 이용 장군과 참모장이었다. 그분들은 모두가 일본 지원군 출신이었다. 그래서인지 상당히위압적이었다.
(4)“민영구 제독과 김관오 장군을 어떻게 아는가?” 참모장이 나에게 물었다.
(5)“그 어른들은 저희 집안과는 중국에서 살던 시절부터세교가 있었던 분들입니다”라고 주눅이 들린 목소리로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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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그렇다면 귀관의 집안도 소위 독립운동을 한 집안이
(2)란 말이야?” 상당히 경멸조의 반문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나는 마치 죄 지은 사람처럼 답했다. 내심 뜨거운 분노가 치밀었다. 이 사람들은 독립운동가에 대해상당히 적의를 갖고 있는 듯했다.
(3)면접시험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이 말을 부모님께 해야 하나, 아니면 나 혼자 새겨야 하나 고민하였다. 내가 모욕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모님이 알게 되면 얼마나 실망할 것인가.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에 들어가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던 자들이 득세하여 장군이 되었고, 해외에서 목숨 바쳐 싸웠던 독립운동가의후손은 오히려 멸시를 당하는 이런 모순에 대하여 나는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4)서울대학교에 시험을 보러 가기 바로 전날 육사에서 합격통지서가 왔다. 나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내가 육사에 가면 집에서는 학비와 내 생활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어머니는 너무 고생하셨고, 아버지는 왜놈에게 고문을 당하여 청각을 잃었는데도 보청기조차 없다.좋다, 군인이 되자. 그렇게 결심을 하고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입학시험 날 당한 모욕이 잊혀지지 않았다. 결국 군대에 가면 왜놈에게 충성을 바쳤던 장군들이 설치는 세상에 살게 될 터인데….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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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아버님에게 내 생각을 글로 써 보여드렸다. 아버님은
(2)한동안 생각을 하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3)”돈이 없어 육사에 간다는 생각은 말고 선조들이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던 그 정신에 따라서 간다고 생각하면안 되겠느냐? 너도 알겠지만 우리나라는 너무 문관에편중하여 문약해졌기 때문에 남의 나라로부터 침탈을받았다. 국력이란 바로 나라의 힘이란 뜻 아니냐? 일찍이 할아버님도 문관 우위의 옛 가치관이 잘못되었다고생각하고 무관을 기르기로 한 것이다. 이제 네가 결심하기 바란다.”
(4)나는 육사 구술시험 때 일을 이실직고했다. 아버님은한순간 몹시 분개하더니 곧 평정을 되찾고 말씀하셨다.
(5)“네가 받은 억울함을 안다. 우리는 이미 10년간을 그런잘못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앞길을 피해간다면 되겠느냐? 바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일제로부터 해방은 되었지만, 일제잔재로부터 진정한독립은 아직 안 끝났다. 앞으로 두고두고 할 일이지….”
(6)나는 서울대학교 시험을 포기하고 육군사관학교에 입
(7)학하기로 작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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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얼마 후 아버님은 민영구 제독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2)“아니 육사라는 데가 민족정기부터 바로잡아야 할 터인데 독립운동을 모욕했다니 말이 되오. 이게 도대체어느 나라 군대요.”
(3)민 제독은 당장 진해 육군대학 총장으로 있는 이종찬장군에게 항의를 했다. 이종찬 장군 또한 즉각 육군사관학교에 연락하고 상당히 나무랐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겪은 모욕감은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그것은 나 개인에 대한 모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일화의 주인공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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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찬 현 광복회장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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