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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장군의 부인과 큰아들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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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골 지형을 이용한 의병들의 신출귀몰한 활약에 어려움을 겪던 일본군은 회유 작전을 병행하기로 함

전향하면 귀족 지위와 돈을 주겠다고 의병들을 회유하는데 이때 “가족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라”는 지시가 있었음

이게 무슨 뜻이냐면 니가 생각하는 그거 맞음

일본군은 홍범도 장군의 부인과 큰아들을 납치함

그리고 전향을 권하는 편지를 쓰라고 협박함

이때 홍범도 장군의 부인 이옥녀 여사는 이렇게 대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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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계집이나 사나이나, 영웅호걸이라도 실 끝 같은 목
(2)숨이 없어지면 그뿐이다. 내가 설혹 글을 쓰더라도 영웅호걸인 그는 듣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나더러 시킬것이 아니라 너희 맘대로 해라. 나는 아니 쓴다.”

모진 고문과 협박에도 버티던 이옥녀 여사는 고문 후유증으로 철창 안에서 사망함

일본군은 부인이 쓴 것처럼 조작한 편지를 홍범도 장군에게 보냄

그런데 편지를 전하러 간 사람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함 (다 죽ㅇ…)

8명을 보내도 소용 없자 9명째로 보낸 사람이 홍범도 장군의 큰아들 홍양순

홍양순이 편지를 품고 깊은 산 중에 들어서자 곳곳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 총구를 들이댐

홍범도 장군은 일본군이 보낸 전령이 자신의 장남이란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음

홍범도 장군은 자식이 아버지를 망치려 든다며 크게 노하여 홍양순에게 총을 쏨

그러나 역시 마음이 흔들렸는지 총알은 홍양순의 귀를 스침

홍양순은 한동안 몸을 추스르며 다친 귀를 치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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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상처를 회복한 홍양순은 아버지의 의병 대열에 합세
(2)했다. 17살짜리 소년 의병이 됐다. 소년은 아버지를따라 여러 전투에 참가했다. 함흥 신성리 전투, 통패장골 쇠점거리 전투, 하남 안장터 전투, 갑산 간평 전투,구름을령 전투, 괴통병 어구 전투, 동사 다랏치 금광전투 등이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홍양순은 1908년6월16일 정평 바맥이 전투에서 전사했다.
(3)노년이 되어서도 홍범도는 그 전투를 잊지 못했다.
(4)“정평 바맥이에서 500명 일본군과 싸움하여 107명살상하고, 내 아들 양순이 죽고 의병은 6명이 죽고 중상자가 8명이 되었다. 그때 양순이는 중대장이었다. 5월18일 12시에 내 아들 양순이 죽었다.”

홍양순 의병은 아버지 휘하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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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상하나 철거하는데 왜 그렇게 오래 걸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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