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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바로 대전
(2)보통 대장군전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3)그건 일종의 미사일 이름이라고 보면 됨.
(4)화포마다 들어가는 대전의 사이즈가 다르고
(5)그 중 가장 큰 거의 별칭이 대장군전임.
(6)구경이 가장 큰 천자총통에 들어가는게 대장군전이고 더 작은 현자,지자 총통에 들어가는 대전은
(7)다 따로 있었음.
(8)가장 큰 대장군전은 길이 1.8m에 무게는 30kg 정도 됐다고 함.앞 부분은 현대의 벙커버스터마냥 철로 되어있어서 관통력도 상당했는데
(9)해군사관학교에서 재현했을때 400m에서 화강암을 80cm나 뚫고들어감
(10)참고 KBS 별의 이순신 104
(11)해전에선 보통 적함을 작살내는 용도로 쓰였음.
(12)일례로 안골포 해전에선 구키 요시타카가 이끌던 함선은 모두 격침당했음 ㅋㅋ 여담으로 요시타카는 얼마나 황당했는지 자기 배에 적중당한 대장군전을 뽑아서 집에 들고 갔고 지금도 전해져 내려오고있음.(위 사진)
(13)해전만 쓰였느냐? ㄴㄴ
(14)육상전에서도 유용하게 쓰였음.
(15)일본군은 공성전때 ‘타케타바’라고 대나무를 엮어 만든 방패를 사용했음.
(16)두께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수성하는 측에서 쏘는 조총탄이나 화살,돌 정도는 그냥 튕거내는 사이즈라 공성전때 유용하게 썼고, 전국시대 수많은 공성 전투 짬바에서 나온 나름 전략적인 무기였음.
(17)물론 대전에 쳐맞기 전까지는 말이야.
(18)두께고 나발이대들고통나무에 쳐맞으면 다 쪼개지고 무용지보만한
(19)물 되는건일순간이었음.
(20)이 외에 성을넘기위만든 누각 같은것도 가져오는 족족 다 박살해
(21)내버렸음.
(22)대전이활약한 대표적전투가 행주대첩인데인
(23)아낙네들행주이치돌을 메어들고와 왜군의 뚝배기를 터트렸다마에
(24)는 민간설화가있지만당연히거짓말임.
(25)대전을 비롯강한화력무기를 적력한활용극하1여0넘는 병력배가
(26)을 박살특히 천자총통과 대냈고적극군전이활약했음
(27)일본군에면군 화살 나 무 만오죽하선”대들보를 뽑아 대조선군이쏜다”, “조선포로ㅋㅋ
(28)은하다같장계올라갔정도ㅋ
(1)센스없는놈 2023-08-20 23:41:0939270 이미지 텍스트 확인
(2)고마워요 성심당 [1] 이동
(3)자동차좋아함 2023-08-20 23:28 447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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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임진왜란 전에 조선에 마지막 처들어온 왜구 수가 일만명이 안넘었음. 선조가 대강 방어를 하고 예상한게1만명 수준이 었던거지.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그 당시 시대에 어떤 미친놈이 10만명을 원정군으로 보냄?바다 건너는 선박들 준비와 그 비용, 실패했을 때 치러야할 정치적 압박, 보급 보내다 보면 나라 거덜 나는 비용(고려 때 20만 원정군으로 여진족 토벌 몇년한적 있음. 그렇게 전쟁 계속 치르다가 파산할것 같아서대충 여진족이 사과하니까 기껏 동북 9성 만들어놓고땅 그대로 돌려주고 돌아갔음.) 그걸 완벽하게 대비하려고 군사 10만명 정도 양성했으면 선조가 전쟁전까지 계속 신하들한테 욕 오지게 먹었을 거임. 물론 선조가 전쟁 후에 병크를 많이 터트렸지만,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치는 취하긴 했음. 상대가 너무 거하게 미친놈이여서 그렇지. 이미지 텍스트 확인
(2)++ 추천 ㅁ 신고
(3)ㄴ일본에서조차 히데요시가 임란 일으킨건 쉴드 못치는 걸로 앎ㅋㅋㅋ 능력있던 놈이 갑자기 노망났나 수준 아니던갘ㅋㅋ
(4)LD 사자삐약이 2023-08-21 12:49:54
(5)경제력을 뭐로 판단하는지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식량생산량 기준 조선이 1100만석고 일본이 1900만석고로 예상합니다. 물론 일본 본토에서 싸우는게 아니어서 같은 조건은 아니지만 단순 가용가능한 병력은 일본이 1.5~2배 많을 수 밖에 없고..그마저도 일본군은 오랜 전쟁으로 단련된 정예라..대비를 했어도 쉽지 않았을 전쟁이었을겁니다.
경제력 비교는… 제가 다른 곳에서 들은 걸로는 총 생산량은 일본이 더 컸고
다만 조선의 중앙집권 수준과 행정력이 훨씬 높았기에 (왜국은 봉건제)
국가차원에서 동원 가능한 자원으로 따지면 조선이 더 많았다고 하더군요
다만.. 한순간에 털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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