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녀의 금지된 사랑 이야기 ㄷㄷㄷ.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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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시 서베를린 템펠호프 공항에 착륙한 LOT 16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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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을 쌓는 모습

모든 일은

금지된 사랑

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독일이 서독과 동독으로 분단되어있던 1976년

당시 동베를린에 살던 잉그리드 루스케는 자비네라는 어린 딸을 둔 이혼 여성이었다.

이혼 후 동베를린에서 자비네와 단둘이 살면서 바에서 일을 하던 그녀는 우연히 함부르크에 살던 호르스트 피셔 라는 남성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마치 운명처럼 서로 사랑에 빠졌고, 호르스트는 자주 동베를린에 들러서 잉그리드를 만났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당시 동서독 간에 교류가 있었고 상호왕래도 가능했으나

동서독인이 결혼을 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서독에 살던 호르스트가 사랑 때문에 동독으로 와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반대로 잉그리드가 정상적으로 서독에 가서 살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렇게 되자, 고심하던 잉그리드는 자신이 일하던 바의 웨이터인 한스 데트레프에게 이 고민을 상담했다.

데트레프도 서베를린에 아들을 두고 있는 상황이었던지라 잉그리드의 처지에 공감이 갔고 결국 데트레프는 한 가지 결정을 했다.

“동독을 탈출하자!”

잉그리드는 처음 고민했으나 결국 망명을 결행하기로 했고 호르스트도 이들을 도와 망명을 성공시키기 위해 합심했다.

이들은 망명을 위해 계획을 세웠는데, 그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호르스트가 서독에서 잉그리드, 자비네, 데트레프의 위조 서독여권을 만들고 잉그리드, 자비네, 데트레프는 폴란드로 가서 호르스트를 만나 위조여권을 받은 다음 화물선에 밀항해서 서독으로 탈출한다.”

그리고 1978년 8월 26일, 세 사람은 폴란드로 향했다.

기차역에서 호르스트와 만나 위조여권을 전달받으려 했으나 문제가 생겼다.

호르스트가 그만 동독 측에 의해 수상하다는 이유로 체포되었고 수색과정에서 세 사람의 위조여권이 드러나 버렸다.

데트레프는 호르스트가 동독에 체포되어서 위조여권까지 들켰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것은 곧 이미 이들의 망명시도가 동독에 들켰다는 것이고,

동독으로 돌아가게 되면 세 사람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란 뜻이었다.

고심하던 데트레프는 우연히 자비네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 권총을 보고서는 실물과 흡사한 장난감 권총을 이용해서

미친짓을 하기로 결심했다.

“비행기를 납치하자. 그리고 서독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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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그리드 루스케의 모습 (사진 가장 왼쪽)

하이재킹

1978년 8월 30일, 데트레프와 잉그리드, 자비네는 폴란드 그단스크 공항에서 LOT 폴란드 항공 165편 Tu-134 여객기에 탑승했다.

LOT 165편은 그단스크를 출발해 약 500km를 날아 오전 8시 50분경, 동베를린의 베를린 쇠네펠트 공항에 착륙할 예정이었다.

데트레프는 스튜어디스에게 코냑을 연거푸 주문했는데, 이는 항공기 납치에 대한 긴장을 풀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승무원들의 동태를 살피기 위한 목적이 더 강했다.

세번이나 코냑을 주문한 데트레프는 스튜어디스가 혼자 있는 틈을 노려서 자비네의 장난감 권총을 들고 스튜어디스를 협박해 조종실로 향했다.

그리고 장난감 권총으로 기장과 부기장을 위협해 쇠네펠트 공항에 착륙하려는걸 막고 서베를린의 베를린 템펠호프 공항으로 향할 것을 지시했다.

어쩔 수 없이 기장은 쇠네펠트 공항을 벗어나서 서베를린 쪽으로 향했다.

착륙 예정인 기체가 착륙하지 않고 서베를린 쪽으로 향하자

동독은 즉시 두대의 전투기를 발진시키고

LOT 165편에 회항을 지시했으나 데트레프의 위협에 기장은 계속 서베를린 쪽으로 갔다.

동독은 전투기들에게

LOT 165편을 격추할 것을 지시하기에 이른다

.

이에 미사일이 발사직전까지 갔으나.

느닷없이 전투기들은 LOT 165편 인근에서 이탈해버렸다.

이렇게 된 것은 바로

기장이 발휘한

기지

덕분이었다.

기장은 데트레프가 비행기를 납치하자 당황하면서도 한 가지 행동을 했는데

바로 주파수를 조작하는 것 이었다.

주파수를 조작하여 모든 교신내용이 퍼지도록 은밀히 조치했는데, 이 행동이 중요했던 이유는

당시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이 가까웠기 때문에

이는 곧 미국과 서독도 ‘기체가 망명자에 의해 피랍되었고, 동독이 이를 격추하려 한다’라는 사실을 전파청취로 다 알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 동독은 몰래 비행기를 격추시키고 항공사고로 조작하려 했으나, 미국과 서독이 항공기 피랍사실을 알아버려서 격추하면

엄청난 후폭풍이 불것을 염려한 나머지 최후의 순간 비행기 격추 명령을 취소하고 귀환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렇게 해서 LOT 165편은 위기를 넘기고 서베를린 템펠호프 공항으로 향했지만

마지막 고난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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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템펠호프 공항

오전 9시 40분, LOT 165편은 서베를린 템펠호프 공항 상공에 이르렀다.

기장은 착륙 허가를 요청했으나

관제사는 계속해서 착륙을 불허한다는 응답만 했다.

이런 이유는 당시 서독은 이미 비행기 피랍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목적이 망명을 위한 것이란 사실도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칫 이를 받아들이면 동독과의 교류가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했고, 이 때문에 LOT 165편에게 동베를린으로 돌아가라고 한 것이었다.

LOT 165편은 연료가

점점 떨어져가고 있었기 때문에 사고가 나지 않기 위해선 동독으로 돌아가는 것 말곤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당시 납치가 사실상 마지막 도박이었던 데트레프는 동베를린으로의 회항을 거부했다.

데트레프는 장난감 권총으로 회항 절대 불가를 외쳤고,

그에 의해 기장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템펠호프 공항 상공을 뱅뱅 도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오전 10시경 하늘을 빙빙돌던 165편에 한 가지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서베를린 템펠호프 공항에서 착륙을 허가 한 것이다.

불과 20분만에 일어난 반전이었다.

이렇게 된 건

미국의 결단 때문이었다.

템펠호프 공항은 주독미군의 관할 아래 있었기 때문에 착륙에 영향을 미치는건 서독보다도 미국에 더 큰 영향력이 있었다.

망명자가 항공기를 피랍해 망명을 시도하려 한 것이란 사건의 이유를 알고있던 미국은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비행기의 착륙을 허가한 것이다.

이렇게 착륙하면 좋았겠지만 마지막 고비가 남아있었다.

LOT 165편은 대형기였기 때문에 착륙에 필요한 활주로의 길이는 최소한 2100m 정도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템펠호프 공항의 활주로 최대 길이는 1700m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무리하게 착륙했다간 망명은 커녕 대형참사가 날 수도 있었다.

기장은 활주로가 짧기 때문에 회항할 수 밖에 없다고 데트레프에게 말했으나.

데트레프는 서베를린에 있는 아들 이야기를 하며 눈물로 기장에게 사정 사정했고,

결국 기장은

착륙한다는 결단을 내리기에 이른다.

첫 번째 착륙시도, 165편은 충분한 거리 확보에 실패해 다시 상승하여 재착륙시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두 번째 착륙시도.

이때도 충분한 거리 확보에는 실패했으나 기장은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 착륙을 강행했고, 상당히 무모하고 위험한 시도였으나

착륙에 성공했다!

겨우 12M

를 남겨두고 간신히 LOT 165편은 템펠호프 공항에 아무 사고없이 착륙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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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일의 LOT 165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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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5월 1일 법정에 출두하는 데트레프

데트레프와 잉그리드, 자비네는 템펠호프 공항에 발을 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때 망명을 위한 비행기 납치였다는것을 승객들도 뒤늦게 알아챘는데

승객 중 6명이 망명을 희망하여 이 6명도 함께 비행기에서 내리게 되었다.

비록 망명을 위한 것이었다고는 하나

엄연히 비행기를 납치한것은

범죄

였던 만큼, 데트레프와 잉그리드는 항공기 납치 혐의로 템펠호프 공항 내의 주독미군 군법재판에 회부되었다.

잉그리드는 항공기 납치에 가담하긴 했으나 승객들에게 위해를 가한 일은 없다는 점 때문에

무죄판결이 내려졌으나

데트레프는 장난감 권총이기는 했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위력으로 승무원을 협박해 항공기를 납치했기에

9개월 징역형에 처해졌다.

그나마 망명 목적이 감안되어 정상참작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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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5일 잉그리드가 무죄판결을 받고 변호사와 함께 기뻐하고 있다.

한편, 이들의 탈출을 돕다가 동독측에 발각된 호르스트는 동독 슈타지 형무소에서 기약없는 투옥생활을 해야 했다.

동독은 국제여론을 의식해서 LOT 165편은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지만 호르스트는 괘씸죄가 더해져서 신병을 풀어주지 않았다.

잉그리드는 미국 정부에 호른스트의 석방을 위해 교섭해 달라고 탄원했지만 미국 입장에서도 호르스트를 빼낼 만한 방도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자 잉그리드는 재판과정에서 변호사의 조력 등이 없었기 때문에 인권을 침해당했다는 이유로 미국정부에 거액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배상금이 목적이 아니라 호르스트의 석방을 위해서 미국 정부를 움직이게 하려는 목적이 컸다. 결국 미국 정부는 잉그리드에게 소를 취하하면 호르스트를 석방하기 위해 동독과 협상하겠다고 약속했고 잉그리드는 소를 취하했다.

결국 호르스트는 무려 2년여가 지난 1980년 10월에서야 석방되어 서독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사랑하는 잉그리드와 재회할 수 있었다.

이후 호르스트와 잉그리드는 마침내 1985년 결혼했다.

둘이 결혼한 후 4년 뒤인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독일은 통일되었다.

호르스트는 2006년 사망했고, 잉그리드와 데트레프는 각자 베를린에서 평온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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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시 승객중 망명을 희망했던 콘스탄츠 슈뢰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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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그리드 루스케의 2010년 모습. 남편은 사망한 뒤였다.

사건명 :

LOT 165편 납치 사건

발생일 : 1978년 8월 30일

유형 : 하이재킹

출발지 폴란드 그단스크 공항

목적지 베를린 쇠네펠트 공항

탑승 인원 : 승객 62명 승무원 7명

생존 : 69명 전원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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