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세계사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계인 비행기를 만든 최초의 사람은 1903년 미국의 라이트 형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고대의 문헌들을 뒤져보면 라이트 형제 이전에도 하늘을 나는 도구나 기계를 만들었다는 내용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조선 후기의 학자인 신경준이 쓴 책인 여암전서와 이규경이 쓴 책인 오주연문장전산고 등에 의하면, 놀랍게도 조선에 일본군이 쳐들어온 임진왜란(1592~1598년) 무렵, 전라북도 김제의 정평구라는 사람이 비차를 만들어서 제 2차 진주성 전투(1593년 7월 20일~27일) 당시 사용했다고 합니다.
기록들에 의하면 정평구는 무관 출신으로 제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일본군의 숫자가 많고 조선군의 수가 적어 불리하자, 위태로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심을 하다가 비차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비차의 정확한 구조나 형태는 알 수 없지만, 뜨거운 불을 때면서 하늘을 날아다녔으며, 심한 바람이 불면 제대로 날지를 못하고 땅에 떨어질 위험성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정평구는 이 비차를 이용해서 일본군에게 포위된 경상도의 어느 성에서 사람을 구출하고, 바깥에서 식량을 가지고 와서 진주성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으며, 때로는 돌이나 화약을 싣고 다니며 일본군을 향해 공격을 하는 용도로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일본군이 쏘아대는 조총에 맞아 비차는 추락하고 정평구도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된 지 7일 후에 진주성은 일본군의 맹공격을 받아 함락되고, 그 안에 들어가 싸웠던 조선 군사와 백성들 약 6만 명도 모조리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정평구가 죽고 난 이후에도 비차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오주연문장전산고를 보면 충청도 출신의 윤달규라는 사람이 백조와 비슷하게 생긴 비차를 만들었다고 하며, 최대 4명까지 탈 수 있고,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면 무려 1백 장(丈 300미터)의 거리까지 갈 수 있지만, 바람이 너무 거세지면 땅에 떨어질 우려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비차들이 도대체 어떤 형태였는지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서 지금도 비차의 복원을 두고 서로 다른 의견들이 엇갈리는데, 대략 원시적인 열기구나 글라이더와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불을 때며 하늘을 난다는 점에서는 열기구라고 볼 수도 있고, 바람을 타고 난다는 점에서는 글라이더와 비슷합니다.
아마 정평구가 만든 비차는 열기구와 비슷했던 듯하고, 윤달규가 만든 비차는 글라이더와 비슷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전에 한국 육군 사관학교에서 비차를 복원했을 때는 글라이더와 비슷하게 만들었는데, 열기구와 비슷했을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은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