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제 전 MBC 사장과 그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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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성제22시간.
(2)주말에 아내와 함께 다큐멘터리 <문재인입니다>를 봤습니다. 극장 안에서 나는 스크린에 집중하지 못하고 옆자리아내의 얼굴을 자꾸 흘끔흘끔 쳐다봤습니다.
(3)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내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4)“나, 청와대에서 오퍼 받았어. 윤영찬 국민소통 수석을 만났는데 같이 일해보자.”
(5)”청와대? 무슨 자리인데?”
(6)“뉴미디어비서관, 인터넷 대국민 소통과 홍보를 담당하는자리야. 문재인 대통령이 뭔가 제대로 된 국민청원 시스템을 원하는데 그것도 새로 만들어야 한대.”
(7)“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8)“며칠 고민 좀 해보겠다고 했어.”
(9)아내는 신문기자 출신입니다. 2008년 다음으로 이직했다가, 카카오가 다음을 인수한 뒤부터는 카카오의 정책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1월에 부사장으로 승진해서 이른바’IT 업계의 잘 나가는 여성 임원’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윤영찬 수석도 문재인 후보 캠프에합류하기 전에는 네이버에서 임원을 지냈습니다. 그래서같은 언론인 출신에 포털에서 비슷한 일을 하면서 호흡이잘 맞았던 아내에게 비서관 자리를 제안했을 것입니다.
(10)나는 아내의 청와대행을 별로 찬성하고 싶지 않았습니다.청와대 비서관은 보통 2년 쯤 죽어라고 일하다가 교체되는 것이 관행입니다. 아내가 직업 공무원이라면 비서관이좋은 경력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민간인에게는 청와대를 나온 뒤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심각하게 제한되기 마련입니다. 대학 교수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이라면 복귀할곳이 있겠지만 아내가 다시 기업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워보였습니다. 혹시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꿈이 있다면 모르겠죠. 그러나 아내는 평소 정치에는 뜻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11)”내 생각에는 안 가는 게 좋을 거 같아. 당신 부사장 된 지얼마 안 됐잖아. 카카오도 좋은 회사인데 거기서 할 일이더 많지 않을까? 연봉도 절반 이하로 깎일 텐데.”
(12)아내도 내 말을 인정하는 눈치였습니다.
(13)“아무래도 그렇겠지? 며칠 고민하는 척 하다가 미안하다고 사양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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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통령을 돕고 싶다며 아내의 눈이 반짝이는 걸 보면서 나는 바로 마음을 바꿔 먹었습니다. 더 이상 반대하면 아내의 꿈을 가로막는 꼰대 남편이 될 게 뻔했습니다. 더구나가슴 뛰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데.
(2)“가슴이 뛴다니, 어쩔 수 없네. 한 번 제대로 도와드려 봐.당신이라면 누구보다 잘할 수 있을 거야.”
(3)얼마 뒤, 아내는 카카오에 사표를 내고 뉴미디어 비서관이되어 청와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연봉이 반토막 나고 부사장 승진할 때 받았던 스톡옵션도 모두 반납했지만 아내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와 기대감이 한껏 드높던 시절이었죠. 덩달아 임종석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 강경화 장관 등 청와대 참모와각료들의 인기도 상종가였습니다. 그런 정부에서 국민들과 소통한다는 대의명분이 아내의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했을 것입니다. 그깟 수억대 연봉과 스톡옵션이 뭐라구.
(4)그리고 석 달 뒤, 야근을 밥먹듯하며 일했던 아내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만들어 냈습니다.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답한다’는 컨셉으로 청와대 참모나, 장관들이 직접 출연해서 답변하는 방식은 큰 화제를 부르며 민심을 읽는 바로미터가 됐습니다. 정권교체와 함께 잊혀진 제도가 됐지만.
(5)청와대를 나온 뒤 아내는 내 예상대로 기업으로 돌아가지못했습니다. 대신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고, 책을 쓰며 살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 때 여러 캠프에서 다양한 제안이있었지만 모두 사양했습니다.
(6)<문재인입니다>는 문 전 대통령의 공과를 파고들기보다는 그의 일하는 스타일과 ‘고구마’로 상징되는 성품의 이런저런 면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영화더군요. 영화 내내 아내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극장을 나서는 길에 나는 아내의 손을 잡아주며 물었습니다.
(7)“저 양반의 비서관으로 일했던 것, 후회하지 않아?”
(8)아내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9)“가슴 뛰는 일을 했잖아.”
(10)댓글 76개・공유 42회

멋지고 고마운 분들이네요..

국민청원은

다시 부활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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