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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손기정
(2)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 유물
(3)“자판(일본)! 기테이 손(Kitei Son)!” 경기장 스피커에서 1위를 호명하자 묵묵히 시상대로 나선 선수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올림픽 마라톤 신기록 수립에 관중들은 환호했지만 부상으로 받은 월계관 묘목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린그의 얼굴엔 나라 잃은 슬픔이 그대로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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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의 입국 모습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손기정 선수의 귀국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경찰에 의해 피의자가 체포돼 끌려가는 듯한 모습.
손기정은 1936년 초가을, 비행기로 인도, 싱가포르, 일본을 거쳐 서울 여의도에 도착함.
통상의 입국 경로인 부산을 통해 기차로 상경했다면 열차가 멈추는 곳마다 환영
인파가 몰렸을 것이고, 그야말로 전국이 그에 대한 환영 열기로 들끓었을 것이다.
하지만 총독부는 따로 비행기편을 마련해 울산을 거쳐 여의도 비행장에 내리게 했다.
당시 여의도는 경성과는 동떨어진 곳으로 시내로 들어오는 다리가 전혀 없었다.
여의도가 시내로 연결된 것은 1970년 마포대교
완공 이후다.
그전까지는 오직 신길동으로만 다리가 놓여 있던 섬에 불과했다.
총독부의 이런 철저한 통제 속에 우리의 금메달 리스트를 환영하러 온 사람은
그의 형 손기만씨와 그의 모교 양정고보의 안종원 교장뿐이었다.
모교에서는 전교생이 대대적인 환영준비를 하고 기다렸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여의도에서 바로 그의 하숙집이었던 당시 체육교사 김수기의 집으로 향했다.
입국날뿐만 아니라 그 후로도 그는 항상 감시 속에서 살아야 했다.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다.
“나라 잃은 백성, 상가집 개만도 못하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
.
-조영건교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