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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님의 유언을 300년동안 지킨 어느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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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물 사전 1편
(2)항왜 장수 김충선
(3)김충선에 대한 아마도 모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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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임진왜란 시기!
(2)조선으로 자신의 부하 3,000명과 함께
(3)투항을 한 어느 일본의 사무라이가 있었으니…
(4)사야카(沙也加) 김충선은・・・
(5)1571년출생
(6)임진왜란 시작. 가토 기요마사의 선봉장으로
(7)조선에 왔으나 투항, 왜와 맞서 싸움
(8)권율과 한준겸의 주청으로 ‘김충선’ 이라는
(9)이름을 하사받고 자헌대부에 오름
(10)정유재란 의령전투에서 공을 세움
(11)인동장씨 장춘점의 딸과 혼인
(12)정헌대부 벼슬을 받음
(13)이괄의 난을 진압
(14)정묘호란 참전
(15)72세 나이로 사망
(16)바로 김충선(사야카)!!
(17)<<.....선조로부터 성을 받았는데 성은 모래(沙)에서 나오는금(金)에서 따와 김해 김씨를 받았는데 가야 수로왕계인김해 김씨와 구별하기 위해 '사성(賜性:하사받은 성)김해 김씨'라 칭한다. 김충선이 낙향 후 현재의 대구광역시달성군 가창면 우록리(友鹿里)에 사슴을 벗하여 살았기에우록(友鹿) 김씨라고도 한다. >>
(18)그렇게 김해 김씨(혹은 우록 김씨)의 1대 조상이 된김충선 장군은 돌아가시며 유언을 하나 남기는데…
(19)”나의 후손들아…너희는 8대까지는 출세를 하지 말고..
(20)300 여년이 흐르면, 그때에 넓은 세상에 나오도록 하여라.”
(21)그리고 300년 후….
(22)제6대 중앙정보부 차장
(23)1970년 1월 7일 ~ 1973년 12월 3일
(24)제13대 검찰총장
(25)1973년 12월 3일 ~ 1975년 12월 18일
(26)제37대 내무부 장관
(27)1975년 12월 19일 ~ 1978년 12월 22일
(28)제27대 법무부 장관
(29)1978년 12월 22일 ~ 1979년 12월 13일
(30)그의 후손인 ‘김치열’이 장관으로 임명이 되며
(31)김충선의 유언은 정확하게 지켜짐!! ㅎㅎㅎ
(32)출처 웃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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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왜군
(2)장수였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휘
(3)하에 우선봉장으로서 부산에 상륙했다.
(4)그러나 부하들에게 약탈을 금지하는군령을 내리고, 조선 백성에게는 침략할 뜻이 없음을 알리는 효유서(曉諭書)를 돌렸다. 명분 없는 조선 침략에불만을 품었던 까닭이다.
(5)자기가 이끈 철포부대 소속 왜군 500명을 데리고 경상도병마절도사 박진에게 귀순했다. 그때 나이 21살이었다.
(6)조선으로 귀화한 그는 울산, 경주 등을돌며 왜군을 8차례 무찌르는 공을 세웠다.
(7)그 덕분에 도원수 권율의 추천으로 선조에게서 김씨 성을 하사받고 충선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또 정이품(正二品) 자헌대부(資憲大夫) 관직에 올랐
(8)김상보 종친회장은 “학계에서는 김충선 장군이 조총과 화약 제조법을 조선군에 전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왜구에 밀렸던 조선 육군이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던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도 소개했다.
(9)김충선 장군은 임진왜란 외에 정유재란,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에서도 큰 공을 세워 ‘삼란공신(三亂功臣)’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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