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조용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불교에만 심취한 삶을 살았던 이라 전해지는 일화가 거의 없지만
태종이 효령을 평한 말은 남았다.
“융통성이 없고 뭐라고 하든 그저 빙그레 웃기만 했다.
나와 중전은 효령의 웃음밖에 다른 것은 본적이 없다.”
융통성이 없다는 말은 이방원이 세자를 새로 세우는데 불교에 심취한 효령을 설득해보려다 실패한 것 같으며
이방원이 뭐라고 해도 웃으며 무시해버린 것으로 보인다.
어찌보면 격정적으로 상대를 흔들고 판을 짜는 정치가인 태종에게 돌부처 그 자체인 효령은 상극 그 자체였다.
이후 양녕과 엮여서 양녕이 절에서 살생을 저지르는 일까지 터져도 타이르다 그저 웃고 말았는데.
그냥 젊을적부터 해탈해버린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그덕인지 91세까지 장수했다.
이게 얼마나 장수한거냐면 태조때 태어나서 연산군을 보고 죽은것이다.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
둘째조카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을 보고
연산군의 탄생까지 보았는데도 장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