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시절 담임 선생님 장례식에 간 사람.jpg

(1)번째울림26. 오후
(2)<사는얘기>
(3)나는 왕따였다.
(4)대학생이 된 지금이야 난 그냥 혼자가 편해, 라며 웃을 수 있지만
(5)학창시절의 왕따는 단지 혼자라서 힘든 것이 아님을 당신들은 알 것이다.
(6)누구나 그렇듯 내게 이유는 없었다.
(7)’치과에 간다고 체육대회 연습을 빠져서’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8)연습일정을 잡기 시작한 순간부터 미리 말해두었던 것이니그런 단순한 이유 때문은 아닐 것이라고 애써 생각했다.
(9)몇 주 동안을 방안에서 밤새 울며, 동이 트는 것을 두려워하
(10)다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다.
(11)엄마, 나 급식 취소해줘. 도시락 먹을래요.
(12)왜? 밥이 별로야?
(13)아니, 우리 학교 급식 먹으려면 지문인식 해야하잖아요.
(14)내 손에 땀이 많아서 그런지 인식이 잘 안돼서….
(15)그래서…
(16)친구들이 쟨 사람 새X도 아니라서 그런가보다고…
(17)비웃어 나를..
(18)얼마나 정적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19)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겨우 꺼낸 말에,
(20)아빠는 선생님께 전화를 해야겠다며 화를 내셨고 엄마는 나
(21)를 끌어안고 우셨다.
(22)나는 학교에 말하지 말아달라고 나 그냥 조용히 전학 보내주면 안되겠느냐며 울었고,
(23)다음 날 엄마는 오늘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며 늦은 점심까지 나를 깨우지 않으셨다.
(24)이튿날 학교에 갔을 때 나는 여전히 왕따였고,
(25)다만 아빠가 참지 못하고 학교에 전화를 했는지 담임 선생님
(26)께서 쉬는 시간마다 교무실로 부르셨다.
(27)정년을 앞둔 할아버지 뻘의 수학선생님이셨는데
(28)첫 쉬는 시간엔, 내 손을 꼭 잡으시고는
(29)내가 나이가 많다는 핑계로 너희를 너무 방치한 거 같다며
(30)미안해하셨다.
(31)두번째 쉬는 시간엔,
(32)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지 물으셨고
(33)난 이 학교를 떠나고 싶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
(34)다고 그랬다.
(35)선생님께선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으셨다.
(36)단지 그 지옥 같던 쉬는 시간에 나를 가만히 두지 않으셨다.
(37)교무실 청소를 시키시고,
(38)당신의 자리에 있는 화분에 물을 주러 오라하시고,
(39)수학성적이 이래서야 되겠냐며 옆에 앉아 수능 4점짜리 주
(40)관식 문제를 풀게 하셨다.
(41)등교 후 내 자리엔 우유가 터져있거나, 걸레가 올라가 있는
(42)_경우가 다반사여서 아침일찍 와 치우곤 했는데
(43)어느 순간부턴 항상 깨끗했다.
(44)친구들의 장난이 끝난 줄로만 알았는데
(45)평소보다 10분 정도 일찍 등교를 한 날 교실 창문으로 보니,선생님께서 내 책상 낙서를 지우시고 물티슈로 닦고 계셨다.그 모습에 나는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첫교시도 들어가지 않고 펑펑 울었다.
(46)이후로 나는 전학을 포기하고 학교에 남았고, 졸업식은 가지않았다.
(47)단지 선생님 사진 한 장 없는 것이 후회가 되어,
(48)후에 친구에게 졸업앨범 속 선생님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49)얼마 전 선생님의 장례식이 있었다.
(50)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쉴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51)선생님께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님을 너무 잘
(52)안다고,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53)그한마디를 못 한게 가슴에 메어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54)선생님의 방식이, 대놓고 나를 위해 왕따 주동자들과 싸워주
(55)지 않은것이
(56)나아닌 모든 사람들의 기준에도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57)아직도 눈만 감으면 물티슈를 쥐고 있는 그 주름진 손등이
(58)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