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7월 12일, 아드리아해에서 항해 중이던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미해군 6함대 소속 포레스탈급 항공모함 ‘인디펜던스'(USS Independence, CV-62)와 만났다.
인디펜던스는 자신들의 작전구역에 나타난 이 정체불명의 범선을 향해 발광신호와 무전을 날렸다.
“여기는 USS 인디펜던스, 귀함의 소속과 이름을 밝혀라.’
이탈리아인들은 이렇게 답신했다.
“여기는 이탈리아 해군 훈련선 아메리고 베스푸치다.”
미해군 승조원들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이 솟은 3개의 마스트와 하얀 돛을 펼친 범선의 구경하기 위해 전부 좌현으로 몰려들었다. 배수량은 한참 작았지만, 이 시대착오적인 목재범선의 자태는 현대 군사력의 정점인 항공모함의 위용마저 눌러버릴만큼 아름다웠다. 조금 후, 인디펜던스는 엔진을 정지하고 아메리고 베스푸치에게 길을 내어주었다. 국제 선박법에 따르면, 원양정기선(Ocean Liners)에 해당하는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군함보다 통행의 우선권을 가졌기 때문이다.인디펜던스는 천천히 옆을 스쳐 지나가는 이탈리아제 범선을 향해 기적(汽笛)을 크게 3번 울린 뒤 경의를 표하는 무전을 보냈다.
“여기는 USS 인디펜던스, 귀함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다.”
그로부터 정확히 60년의 세월이 흐른 2022년,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 사이 이 배는 지중해를 수백번 돌았고 대서양을 수차례 이상 횡단했으며, 3번 이상 세계일주를 했다. 미국의 USS 컨스티튜션이나 영국의 HMS 빅토리처럼 너무 오래되서 몇십년에 한두번 날씨가 좋을 때만 운행하는 다른 범선들과 달리,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여러차례 현대적 개수를 받아 거친 바다를 넘나들 수 있었다.미해군 측에서는 이 때의 일화에 근거하여 이탈리아 해군에게 양측이 다시 한번 같이 항해를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 해 9월 1일,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아드리아해에 도착했다. 이번에 그들을 마중 나온 배는 미해군 6함대의 니미츠급 항공모함 ‘조지 H.W 부시'(USS George H.W. Bush, CVN-77)였다.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많이 달라져있었다. 배의 동력원은 이제 바람이 아니라 하층 갑판에 설치된 디젤엔진이었다. 길을 찾을 때도 이젠 육분의와 하늘의 별 대신 GPS를 이용한 현대식 위성항법장치를 사용했다. 마스트의 돛들도 상당수 자동화로 변경되었고 더 이상 인력에 의존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 세대가 흘렀음에도 범선은 그 아름다운 자태만큼은 잃지 않았다.
미해군 승조원들은 자신들의 할아버지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메리고 베스푸치를 보기 위해 우현으로 몰려들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스마트폰과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인들은 미국인들을 향해 그 때와 똑같이 무전을 보냈다.“여기는 이탈리아 해군 ‘현역함’ 아메리고 베스푸치다.”
그리고 미해군 역시 그 때와 다름없는 인사로 다시 한번 경의를 표했다.
“여기는 USS 조지 H.W 부시, 귀함은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