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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종실록 26권, 세종 6년 10월 17일 무 2번째기사 1424 명 영 22년
(2)중국에 뽑혀간 한씨 등이 대행황제에
(3)게 순사함을 사신이 말하다
(4)사신이 말하기를,
(5)전후로 중국에 뽑혀 들어간 <우리 나라 여자> 한씨(韓氏) 등이 모두 대행 황제(大行皇帝)에게 순사(殉死)하였다.”
(6)하였다. 이보다 앞서 상인(商人)의 딸 여씨(呂氏)가 황제의 궁중에 들어와 본국의 여씨(氏)와 동성이라 하여 좋게지내려고 하였으나, 여씨가 들어주지 아니하므로, 상인의 딸 여씨가 감정을 품고, 권비(妃)가 졸(卒)하게 되자, 여씨가 독약을 차에 타서 주었다고 무고하였다. 황제가 성을 내어 여씨와 궁인 환관 수백여 명을 죽였다.
(7)그 뒤 상인의 딸 여씨가 궁인 어씨 함께 환자(者)와 간통하였는데, 황제가 알면서도 두 사람을 총애하는와정리로 발설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이 스스로 두려워하여 목을 매어 죽었다.
(8)황제가 성이 나서 사건이 상인의 딸 여씨에게서 났다 하고, 여씨의 시비를 국문하니 다 무복하여 역을 행하고자 하였다 하므로, 그 일에 연좌된 자가 2천 8백 인인데, 모두 친히 나서서 죽였다.
(9)어떤 이는 황제의 면전에서 욕하기를.
(10)”자기의 양기가 쇠하여 젊은 내시와 간통한 것인데, 누구를 허물하느냐.”
(11)자기 첩이 내시랑 간통해서 영락제가 이걸 빌미로 또 숙청
(12)숙청당하는 신하가 죽기 직전 마지막에 사람들 다 있는 앞에서
(13)”지가 내시만도 못한 꼬추를 가져서 첩이 내시랑 바람핀건데 왜 나한테 지랄이냐?” 이렇게 말하고 죽음
(14)명나라는 이걸 당연히 기록하지 않고 묻어버렸는데 조선사신이 돌아와서 그걸 실록에 적어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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