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병사가 기억하는 1960년대 한국

주한미군 병사가 기억하는 1960년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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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Dale A. Patton (1967년~1968년 1년간 미 2사단 DMZ정찰대인 ‘임진 스카우트’로 복무.)
(2)한국은 냄새가 났고 추웠다. 여름에는 더더욱 최악이었다. 비는 거의 한달 내내 내렸다. 겨울은 내 고향 미시건만큼 추웠다. 겉을 보기에 전쟁의 여파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은 모두가 빈곤층이었다.
(3)자유의 다리를 건너 임진강 북쪽 너머 비무장지대에 들어가게 되면 정말 타이트한 스케쥴로 움직여야 했다. 잠자고 정찰하고, 다시 잠자고 정찰하고. 우린 3일간 주야로 정찰을 하고 4일차에 철책 중앙통문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트럭을 타고 막사로 돌아가서 병기를 정비하고 씻은 다음 잔다. 그리고 24시간 후 다시 일어나 정찰을 준비한다. 우린 정찰을나가면 레이션만 먹어야 했다. DMZ 투입이 끝나고 페바로 내려오면치즈버거와 프라이를 먹을 수 있었다.
(4)난 입대 후 한국에서 담배를 배웠다. 대략 하루에 두 갑 정도 피웠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선 담배 맛이 정말 죽였다. 작전 후에는 동료들과맥주 마시며 말보로를 피웠다. 도박을 하진 않았지만 지켜보는 건 좋아
(5)했다. 직보적못했지만 당시 막사에서 부대원 몇 놈은 마약을 하는진
(6)것같다. 사실 한국에 오는 녀석들중 제대로 된 놈들이 많진 않았다. 당
(7)시엔 본토에사고를 치면 한국으로 보내버리는 케이스가 많았다. 그서정찰대 인원들은 전부 좋은 놈들이었다.
(8)래우리도
(9)한국의 가장 큰 사업은 매춘이었다. 부대 근처에는 수 많은 매춘부들이
(10)있었다.남쪽막사정문으로걸어나가매춘부들이 거기 서 있다. 정면
(11)문에같이근무 서는 한국헌병군그녀들의 포주였다. 정문에서 손들이
(12)가락여자로선택하면 병사/를클럽에 데리고 들어갈 수 있다.부사관
(13)화대는 1인당 3-5달한러다.남성들이나 노인들은 그 여성들을 모국인
(14)욕적으대했로정다.슬픈말일이었다.
(15)우부린성교육에서 매춘부로부터 각종 끔찍한 질병을 얻을 수 있다대
(16)고일부는 정상적.매춘부들 만나 사랑과배웠다한국인여성을사귀기도 했지만, 상당수는 그
(17)빠졌다. 일부는 결혼해서 미국으로 데려가기에
(18)도 했하다.지힘만과정든겪을야
(19)내 경험에의하한국인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때는 한국인은면
(20)모두군아니인도둑놈이라고 생각했다. 두 경우 다부합하는 경우도면
(21)있었다솔직하게말하면그때 그,우리가들은자기나라 땅에 있는 걸
(22)바라지 않는것 같았다 왜 그렇게 생각.나로서는는지알 수 없었다.
(23)북친구한군과되가일은 발생하않는다. 난 한국인들과도 친구가지
(24)된 적도역없다.시하지만 우린 막청소사를세탁물을 가져다주는하고
(25)하우스보이에게너그럽대했고, 우리게배속된 카투사들에게도 관게
(26)대하게 대했다.
(27)그 시기, 나는 종종 문산리에 있는 고아원에 가곤 했다.
(28)우리가 트럭을 타고 이동할 때면, 한국아달이들이트럭 뒷꽁무니리며
(29)를 따라왔그.러우면레린션들어있는 캔디나에과자를던져주며
(30)아이들이 그줍기 위해 서로 싸우는걸걸 구경했다.
(31)길리엄이루는다 . 그 리친구와같걸이가는어한 여인이 우리에게 달데,
(32)려왔우리어떤 시설로 데리를모르도어갔다거긴 낡은 건물다.거기 상.들고지금.왜가
(33)그녀를 따라간 건었다 그. 리 고정말들은많겠그 여인은 그곳의 원 장보워그때 고아였다.아지직쓰는 고아원이을
(34)태정말 끔찍했고는
(35)아안쓰느낀 충격은 젊은 시절원에서
(36)내가겪은수은일들중에가서기장각인 됐억에다.하필그면주머때
(37)니에 현조금 밖에 없금도여인서줄 거라곤 푼돈 밖에 없었다에게나는.
(38)원장에게뭐가 필요한물었더니, 아이들에게 입힐 옷지많이필요이하다
(39)고 했다.
(40)그 뒤로 길리엄과 나는 그 고아원을 도와주게 됐다.
(41)아이들을 진심으전부 초 등고 무서 워했다게 편지를돌봤다로못 들어간 애도시 건나이 많은장아이었다. 이들학에서열넷이었고이가나머,
(42)지는학교들우은신기해하릴
(43)난향인미선생님을 하고 있던 친구에교내 앞으로 헌,
(44)써서 이곳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얼마뒤
(45)옷이담긴박스2개가착했다옷들은 사이즈와 크기가 다양했다..다주었다
(46)박스를 트럭으린실로고어서원가져
(47)그날아원마크리치일찍스를맞것한았다 정말 마음이.져있 차가던
(48)따뜻해지는 광경이었다. 그것은 잦은 전투와 피로로 굳어
(49)심장의주 로 박힌 스가보문에까지운 땅개(coinfantry hldeart)다를고시동치했다. 미시건
(50)입은 한국아이와 내가 찍은 사진은 고향 지역웨터를
(51)신됐다.
(52)후다시는 달리는 트럭 위에서 아이들에게 먹을 걸 던지지
(53)않기로 맹세했다.국 을 떠 나
(54)한그날까지 아이들을 도우려고 노력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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