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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최고의 인생작은 아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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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생아였습니다.
출생신고도 되지 않아서 동네 어르신들이
지어준 이름으로 살다가
중학생이 되어서야
드디어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가지고
출생신고를 했습니다.
10살 때 처음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아버지는 매일같이 어린 그를 폭행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자살을 결심했을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반대로만 행동하면
좋은 아버지가 될 거라고 믿고 살아왔습니다.
성인이 된 후 20년 동안 아버지를
한 번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배우가 된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촬영 중에 들은 갑작스러운 소식에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촬영 스태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한 시간 정도 촬영장 주변을 계속
어슬렁거렸습니다.
아버지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막상 돌아가셨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빈소는 집에서도 가까웠지만, 그는 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밉고 원망스러워서
발인에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20년을 안 보고 살았는데
갑자기 아들이라고, 찾아가는 게
어떻게 보면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의 발인이 있는 날,
비록 찾아가지는 않았지만, 그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아내가 먼저
조심스레 말을 건넸습니다.
“여보, 사실 나… 아버님 뵙고 왔어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먼저 들었던 아내는
돌아가시기 3일 전에 두 아이를 데리고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고 했습니다.
아직 아버지가 의식이 있으실 때,
며느리로서 손주들을 데리고 처음 인사를
간 것이었습니다.
“아버님 제가 아버님 며느리입니다.
이 아이가 첫째고요, 얘는 둘째예요.”
희미한 의식 속에서 처음 손주를 본 아버지…
아버지는 아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셨습니다.
그리고 3일 뒤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남편이 싫어할까 봐 말하지 않은 아내는
발인이 끝난 저녁에 이 사람도 마음은 가고 싶을 텐데…
그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망설이며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습니다.
아내의 이야기에 그는 진심으로 말했습니다.
“여보 고마워요…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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