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충무공 이순신과 셋째 아들 이면(李)에 관한 꿈 이야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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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난중일기, 이충무공전서 행록을 보고 직접 만든 자료입니다.

(난중일기)

十四日辛未。晴。四更。夢余騎馬行丘上。馬失足落川中。而不蹶。末豚葂似有扶抱之形而覺。不知是何兆耶。晩裵助防及虞候李義得來見。裵奴自嶺南來傳賊勢。黃得中等來告。司奴姜莫只稱者。多畜牛隻。故十二隻牽去。夕有人。自天安來傳家書。未開封。骨肉先動。心氣慌亂。粗展初封見䓲書。則外面書慟哭二字。心知葂戰死。不覺墮膽。失聲痛哭痛哭。天何不仁如是耶。肝膽焚裂焚裂。我死汝生。理之常也。汝死我生。何理之乖也。天地昏黑。白日變色。哀我小子。棄我何歸。英氣秀脫凡。天不留世耶。余之造罪。禍及汝身耶。今我在世。竟將何依。欲死從汝地下。同勢同哭。汝兄汝妹汝母。亦無所依。姑忍延命。心死形存。號慟而已。號慟而已。度夜如年。度夜如年。是二更雨作。

14일(신미)맑다.밤 두 시쯤 꿈에,내가 말을 타고 언덕 위로 가는데,말이 발을 헛디디어 냇물 가운데로 떨어졌으나, 쓰러지지는 않고,막내 아들 면이 끌어안고 있는 것 같은 형상이었는데 깨었다.이것은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저녁나절에 배 조방장과 우후 이의득(李義得)이 와서 봤다.배 조방장의 종이 영남에서 와서 적의 형세를 전했다.황득중(黃得中)등은 와서 아뢰기를 내수사의 종 강막지(姜莫只)라는 자가 소를 많이 기르기 때문에 열 두마리를 끌고 갔다고 했다.저녁에 어떤 사람이 천안에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했다.봉한 것을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정신이 아찔하고 어지러웠다.대충 겉봉을 뜯고 예(둘째 아들)의 편지를 보니,
겉에 통곡 두 글자가 씌어 있어 면이 전사했음을 짐작했다.
어느새 간담이 떨어져 목놓아 통곡,통곡하였다.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인자 하지 못하는고!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내가 죽고 너가 사는 것이 이치가 마땅하거늘,너가 죽고 내가 사니,이런 어그러진 이치가 어디 있는가!천지가 깜깜하고 해조차 빛이 변했구나.슬프다,내 아들아!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남달리 영특하여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러 두지 않은 것이냐?내 지은 죄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내 이제 세상에 살아 있어본들 앞으로 누구에게 의지할꼬!너를 따라 같이 죽어 지하에서 같이 지내고 같이 울고 싶건마는 네 형․네 누이․네 어머니가 의지할 곳이 없으니,아직은 참으며 연명이야 한다마는 마음은 죽고 형상만 남아 있어 울부짖을 따름이다.하룻밤 지내기가 일년 같구나.이날 밤 열시쯤에 비가 왔다.

李忠武公全書卷之九 / 附錄一 / 行錄[從子正郞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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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주: 十月十四日。公在右水營。聞子葂喪。… 으로 시작하는 구절)

10월 14일 공이 우수영에 있다가 아들 면(葂)이 죽었다는 기별을 들었는데 면은 공의 막내아들로서 용기와 지혜가 있고 또 말타기, 활쏘기에도 능하여 공은 늘 자기를 닮았다고 사랑해 왔던 것이다. 그 해 9월에 어머님을 모시고 아산 본가에 가 있다가 왜적들이 여염집을 분탕질한다는 말을 듣고 달려나가 싸우다가 길에서 복병의 칼에 찔려 죽은 것이다. 공이 그 기별을 듣고 너무 애통한 나머지 그로부터는 정신이 날마다 쇠약해 갔다. 그 뒤에 공이 고금도(古今島)에 진을 치고 있던 어느 날 낮잠이 어슴푸레 들었는데 면이 앞으로 와서 슬피 울면서 하는 말이, 『저를 죽인 왜적을 아버지께서 죽여주십시오.』 하니, 공은 대답하되, 『네가 살았을 때 장사였는데 죽어서는 적을 죽일 수가 없느냐?』 하고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제가 적의 손에 죽었기 때문에 겁이 나서 감히 죽이지를 못하옵니다.』 하였다. 이 말을 듣고 공이 문득 깨어 일어나 곁엣 사람들을 보고, 『내 꿈이 이러이러하니 웬 일인고?』 하며 슬픔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고 그대로 팔베개를 베고 눈을 감았더니 몽롱한 가운데 면이 또 와서 울며 아뢰는 말이, 『
아버지로 자식의 원수를 갚는 일에 저승과 이승이 무슨 간격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원수를 같은 진 속에 두어 두고 제 말을 예사로 듣고 죽이지를 않는다니요.
』 하면서 통곡하고 가버리므로 공이 깜짝 놀라서 물으니 과연 새로 잡혀 온 왜적 하나가 배 속에 갇혀 있다 하므로 공의 명령으로 그 놈의 소행 내력을 물었더니 바로 면을 죽인 그놈일시 조금도 틀림이 없으므로 동강내어 죽이라 명령하였다.

조금 더 찾다보니 어우야담에도 똑같은 이야기가 적혀져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통제사 이순신 군대가 한산도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순신 아들은 충청도에서 싸우다가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이순신은 아들의 죽음을 모르고 있는데, 충청도 방어사가 왜적을 사로잡아 한산도로 압송해 왔다. 이날 밤
이순신의 꿈에 아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나타나, “잡아온 왜적 13명 속에 나를 죽인 적이 끼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들 죽음의 부고가 왔다. 이순신이 잡혀온 왜적들에게, “어느 날 충청도 어디에서 흰 무늬가 있는 붉은 말을 탄 사람을 너희들이 죽이고 그 말을 빼앗았는데, 지금 그 말이 어디에 있느냐”하고 추궁했다. 그러자 왜적 중 한 사람이, “어느 날 흰 무늬 있는 붉은 말 탄 소년이 우리 군중으로 돌진해 3,4명을 죽이기에 풀숲에 복병해 있다가 습격해 죽이고 그 말은 진장(陳將)에게 바쳤다.” 하고 대답했다. 이순신은 통곡하고 그 왜적을 죽이라 명하고는, 아들 혼백을 불러 글을 지어 제사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순신(이면) (문화원형백과 한국설화 인물유형, 2005.,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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