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는 평범한 남성들이 여성 혐오에 빠지는 이유를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뜻밖에도 남성. 그는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을 먼저 펴냈다. ‘페미니스트가 된 남자들’을 펴낸 저자도 남성이다. 남자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느냐는 의심에 이 책을 읽고 리뷰한 블로거 미카엘라는 이렇게 썼다. “안희정 미투가 일어났을 때 40~50대 중년여성들은 ‘여자가 처신을 잘 했어야지’라며 2차 가해를 했다. 2030세대 남성 직장인들은 상반된 반응을 보냈다. 상사의 갑질에 익숙했던 그들은 ‘나는 피해자를 이해할 수 있다’며 공감했다.”
페미니즘이 부정적 ‘낙인’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자부하는 남성들이 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회원 하승수(33), 정재현(26), 김연웅(27)씨도 그들이다. “대학에서 여성학 수업 한 번 들어보지 않은 보통 남자”들이지만, 이들은 “페미니즘은 모두의 공존을 위한 사상”이라고 말한다. 회사원, 교사, 의사, 대학생 등 85명 회원들로 구성된 이 그룹은 지난 2월 광화문에서 ‘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라는 집회를 열고,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20대 남성들을 ‘이대남’이란 단어로 묶어 호명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페미니즘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정치 준비생인 김씨는 간호조무사 일과 식당일에 집안일까지 하다 과로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보고 여성이 겪는 차별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5년차 의사인 하씨가 페미니즘에 입문한 건 의대 재학 시절 중추신경억제제(GHB, 소위 ‘물뽕’)를 배우면서다. 하씨는 이 약물이 클럽이나 데이트 관계에서 성범죄에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한 뒤, 우리 사회에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걸 절감했다. 두바이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정씨는 인종 차별을 겪으며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정씨는 “차별의 경험을 통해 타인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연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대남’ 현상이 그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 김씨는 “어느 순간부터 ‘이대남’은 ‘성차별에 찬성하는 사람’이란 인식이 생겼다. 20대 남성은 그런 집단이 아니라고 항변해야 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이대남 대 이대녀’라는 설정은 취업난, 군 인권, 장애인 등 청년 세대 내부의 불평등 문제를 젠더 문제로 치환해 가리려는 것”이라고 했다. 남성도 페미니즘을 실천할 수 있다고 했다. 김씨는 “페미니즘은 거창한 게 아니라, 성차별적 발언을 하지 않고, 혐오 언어가 잘못됐다고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이들은 젠더 ‘갈등’이라는 표현도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정씨는 “갈등은 동등한 두 집단 사이에 생기는 건데, 사회적으로 여전히 남성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상황에선 적절치 않다”고 했다. 하씨는 “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의 성별 임금 격차가 발생하는 한국에선 남녀 갈등보다도 구조적 차별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군 복무로 20대 남성이 역차별 받는다는 주장에 대해선 “더 민주적인 군대를 만드는 것을 페미니즘 의제에 포함시켜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김씨는 “20대 남녀 공히 어려움을 갖고 있는데 청년 세대의 이런 약자성을 ‘20대 남성의 약자성’으로 포장해 남녀간 대결구도를 만들려는 정치인들의 갈라치기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주변의 시선은 호의적이지 않다. 김씨는 페미니스트 활동 시작 이후 “커밍아웃에 버금가는 ‘인간관계의 재편’을 겪었다”며 “친구들에게 ‘손절’ 당하거나, 조롱 당한 적도 많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페미니즘 활동을 하는 이유는 성평등한 사회가 남녀 모두를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씨는 페미니즘을 통해 맨박스(man box·남성에 부과되는 사회적 기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했다. “‘남자는 성공해야 해’라는 말에 사로잡혀 살아왔지만, 남은 건 죄책감뿐이었죠. ‘남자니까’라는 압박에서 벗어나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 페미니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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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아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