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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공포의 시체 공격.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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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아침먹고 소송, 점심먹고 소송, 저녁먹고 소송하는 노비, 평민, 양반을 가리지 않고 재판에 미친 국가였음.

이 중 소송에서 상대에게 한몫을 단단히 뜯기 위해 사용되는 방법 중 하나가 시체공격인 ‘도뢰’임.

도뢰는 집안에 아픈 사람이나 죽기 직전인

사람이 있을 때 시작됐음.

1. 병자가 죽으면 야밤에 시체를 싸들고

원한이 있는 이웃집이나 부잣집에 찾아간다.

2. 시체를 몰래 문간이나

우물가에 던져놓고 나온다.

3. 관아에 가서 저 새끼들이

우리 가족을 죽였다고 고소한다.

심지어 자살하려는 인간이 자살특공으로 다른 집에 숨어들어서 자살하고

누명씌우기 기타 등등 다양한 방식들이 있긴 함.

수령들에게 살인 사건은 인사고과를 씹창 내놓는 거대 사건이고

일반인 입장에선 살인사건에 엮여서 조사 받기 싫으니까

적당히 합의금으로 때우고 중재하는 일이 많아서 생긴 촌극이었다고 함.

당연히 관아에서도 이런 막돼먹은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거의 현대의 과학 수사에 육박하는 온갖 검시 기법을 창안했고.

오작인 그러니까 검시관들은 썩어가는 시체를 뒤적이면서 이게 시체 공격인지 아니면 진짜 맞아 뒤진건지 검증하기 위해 개고생을 해야만 했음.

게다가 이지랄하는게 흔해서

정약용이 오죽하면 살인사건의 절반이 이런 시체공갈협박과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을 정도임

놀랍게도 괴담이 아니라 흔한 일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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