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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만원 아까워서, 2만볼트 전기 쇼크에 몽골 청년을 떠민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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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오기나는 손 쓰는 운동을 좋아했다. 몽골에서 2012년 한국에 온 그의 취미는 퇴근 뒤 농구장으로 가는 거였다. 연습을 많이 해서 슛이 정확했다. 동네 청년들과 늦게까지 농구를 하고도 다음날 새벽같이 출근했다. 일터-농구장-집만 오가며, 몽골에 다시 돌아가 살 날을 기약했다.

오기나는 더는 농구를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못한다. 한국에서 일한 지 7년째 되던 해에 두 팔을 잃었다. 산업 현장에서 화상 재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이후 6년 동안 멈추지 않는 통증을 참으며 치료와 재활을 거듭하고 있다. 오기나의 팔을 잃게 한 회사 대표와 현장 팀장은 지금껏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고, 손해배상도 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오기나의 삶은 미흡한 산업재해 보상과 불안정한 거주 지위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이 업체에서 일한 지 한 달이 되던 2019년 12월22일. 오기나는 그날도 경기도 화성시 한 공장 지붕 위의 태양광 전지 패널을 세우고 있었다. 이때 그는 ㅅ사 대표와 현장 팀장에게 태양광발전 시설의 전선을 전신주에 연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해당 전신주의 전기 흐름을 막아야 한다. 전기 흐름을 잠시 차단하는 것은 한국전력의 일이다. 전력 차단 요청자가 50여만원을 치르면 된다.

안전장비 없이 ‘전기차단 스위치 내려’

그런데 ㅅ사 대표와 현장 팀장은 이 50여만원을 쓰지 않았다. 현장 팀장은 긴 막대에 절연테이프를 감아 전신주 주상 변압기 위에 있는 전기 차단 스위치를 내리라고 했다.

안전장비를 지급하지 않았고, 안전 요원도 없었다. 수많은 산재 현장처럼 또 이윤 추구만 생각하며 비용을 아끼려다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게다가 오기나에게 이 업무는 처음이었다. “저는 전기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거든요.”

오기나는 사다리차를 타고 전신주로 올라가 스위치를 내리기 위해 막대기를 들었다. 한 손으로는 힘이 부족할 것 같아서 양손으로 막대기를 들었다. 그 순간, 오기나는 온몸이 마비되는 걸 느꼈다. 그의 몸에 2만2900V의 고압 전류가 흘렀다. 강렬한 쇼크에도 오기나의 의식은 남아 있었다. 차라리 의식을 잃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고통이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팔, 다리, 몸에 감각이 없어 움직여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헬기로 환자를 이송해야 한다는 구급대원에게 현장 팀장은

“구급차로 가면 안 되느냐”

는 황당한 말만 늘어놓았다. 결국 헬기로 서울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대수술을 앞두고 어요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요나는 생후 5개월 된 딸과 집에서 전화를 받았다. 오기나가 다쳤다는 이야기는 팀장한테 전해 들었지만, 그처럼 심한 줄은 몰랐다. 어요나도 곧장 서울로 향했다. 통 화를 마친 오기나는 가족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생사를 오가는 수술이 될 것 같았다. “어요나와 아기가 걱정됐어요. 7년 동안 못 봤던 엄마도 생각났어요.”

죽음의 문턱에서 빠져나온 오기나가 맞닥뜨린 건 현실이었다. 사고 후 2년여간 입원하거나 병원 치료를 받으며 지냈다. 그 뒤로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충청도와 서울을 오가며 통원치료를 하고 있다. 6년간 그가 치료받으며 자비 부담을 한 금액은 수천만원이다.

하지만 법원은 ㅅ사와 현장 팀장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청구액의 절반에 못 미치는 2억1천만원 수준만 배상하라고 판단했다. 문제는 이 판결에서 법원은 오기나가 곧 출국해 몽골에서 거주할 것이라는 가정을 하고 위자료를 산정했다는 점이다.

오기나에게 지급할 간병비와 위자료를 몽골 내 평균 임금인 일당 2만원(8시간 기준)으로 계산했다.

https://v.daum.net/v/20251117152134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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