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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년 파티
1325년 파리
수스시다 장안
수당시대 장안과 중세 후기 파리의 차이입니다.
중세 후기에 이미 서양이 동양을 넘어섰다는 분들이 계셔서 올립니다.
흑사병 이전에는 컸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흑사병 이전과 이후의 파리를 같이 올립니다.
중세 후기 파리는 유럽의 대도시였고 게르만문화권이라는 특성상
현재 유럽의 문화적 적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이미 춘추전국시대의 도시 크기가 산업혁명이 시작된 18세기(1760년경)의
유럽보다 도시가 클 정도로 다른 문명보다 압도적인 수준의 문화를 이루었습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삼국시대 후기 도시 크기가 유럽에서 따라잡으려면
산업혁명이 되어야 할만큼 막강한 문화 수준을 가졌으며
개경만 하더라도 전세계 두번째로 클 정도로 번성했습니다.
유럽 르네상스를 과장해서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르네상스 당시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였던 베네치아가
동시대 조선 초기에 오면 한양, 개성, 평양 보다 작은 지방도시에 불과하게 됩니다.
조선 초기까지도 우리나라는 매우 발달한 문명을 가졌습니다.
전근대사회는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시 크기는 곧 문명수준이었습니다.
유럽만 하더라도 전근대사회의 큰 도시는 무조건 높게 평가를 받는데
대표적인 대도시인 로마,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에 대한 평가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역사적인 유럽의 대도시인 위의 있는 파리를 비롯해서
베네치아, 암스테르담 등의 도시는 고평가를 받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