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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JoongAng
국제
일본
“우물에 독? 내가 마서보켓다” .
조선인 300명 구한 l경찰 [간토대
지진 학살 100년]
중앙일보
입력 2023.09.01 05.00
지면보기
김현예 기자
가나가와 경찰 기록으로 본 그날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발생한 규모
7.9의 대지진은 요코하마름 초토화시켜다 지진
이틀째 상황이 약화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올
풀없다’눈 유언비어가 갑시간에 퍼적다
일제강점기인 당시, 가나가와현에는 조선인이
몰려 살앉다. 급속도로 퍼진 유인비어률
망신햇던 자경단이 조선인을 무차별 공격하기
시작있다.
당시 46세이터 오카와 서장은 쓰루미 경찰서에
조선인올
보호하기 시작있다. 하지만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부하 경찰관들조차
동요있다 오카와 서장은 “조선인들은 모두
선랑한 사람(로E) “이라여 설득햇지만 쉽지
않앉다 동요가 이어지자 오카와 서장은
조선인들올 근처에 있던 절 본당으로
이동시경고 이들올 보호하기 위해 경찰관
30여명올 배치햇다. 조선인의 수가 계속 늘자
그는 다시 경찰서로 이들올 옮격다.
오카와 쓰네구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300명올 구한 일본
가나가와현 쓰루미경찰서장 오카와 쓰니키치. 김현예 도교 특파운
대지진 사흘째인 9월 3일, 1000명이 넘는
무리가 쓰루미 경찰서클 에워싸다. “경찰서가
조선인 보호소나 조선인올 내놓으라”눈 위협이
이어적다 일춧주발의 상황에서 오카와
서장은 “조선인에제 손올 대불데면 대보라. 한
명이라도 넘겨줄
없다”고 맛섞다. “한
명이라도 탈출하면 어떻게 하켓느나”눈
자경단의 항의에 그는
‘만약 –
명이라도
도망치는 사람이 있다면 활복하켓다”고
약속해다. 결국 자경단은 돌아켓고, 그가 이렇게
구한 조선인은
300명에 이르렇다:
경찰 기록 외에도 당시 그의 행적올 쫓은 기록0
있다 재일동포 작가 박경남 씨가 오카와 서장의
아들과 목격자들올 취재해 1992년 출간한
[두중실 달이 떠오르면 이다 ‘불량한
조선인’올 내놓으라는 자경단의 겁박이 짓던
9월3일, 오카와 서장은 “조선인들이 독올
투입한 우물물올 가져오라. 내가 먼저 마시켓다.
이상이 있으면 조선인들올 넘기켓다. 이상이
없다면 이들올 나에게 맡기라”고 일갈있다.
오카와 서장은 왜 조선인올 감싸느나는
자경단의 힘책에 “어느나라 사람이든 사람의
생명은 변함이 없다. 인간의 목숨올 지키는 것이
나의 일이다”라고 답있다.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300명올 구한 일본 가나가와현
쓰루미
‘경찰서장 오카와 쓰네키치가 받은 감사장을 손자 오카와
유타카씨가 들어보이고 있다 감사장은 한문과 한글을 섞어
‘싸어이다
김현예 도교 특파원
책올 보여주던 손자 오카와 유타카는 “당시
조선인올 보호해달라고 의원에게도 요청하기도
햇는데 역시 왜 그런 말을 하느나는 소리블
조부가 들엇던 것으로 안다”며 당시 상황을
전있다.
그논 “조부논 가나가외현에서 경찰서 4곳올
돌여 근무있다”고 밝싶다. “경찰이니까 동네에
서로 얼굴올 익히고 알고 지내던 조선인들이
망있올 테고, 사람들올 보호하는 것이 경찰의
일이라고 생각해서 보호햇올 뿐이없올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있다.
듯#
주사
~룻출
n꽃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300명을 구한 일본 가나가와현
쓰루미경찰서장 오카와 쓰네키치가 당시 받은 감사장. 한문고
한글을 섞어
감사장엔 한국인들의 이름이 함께 쓰여있다.
도’ 특파원
하나둘
김현예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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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오카와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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