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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전투에서의 제갈량의 패착.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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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병참 전진기지로서의 가정이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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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 진출해서 막 농서지방의 민심이 동요하고

위나라로부터 촉으로 귀의하려고 할 때 빠르게 진격하여 각 지역을 다 접수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 때 꾸물거리면서 진격을 늦추다가 결국 다시 각 지역들이 위나라로 넘어가버렸다.

– 제갈량 최대의 실책입니다.

제갈량전 원자의 주석에서 확인되는 부분입니다.

“”원자에 따르면 우선 제갈량은 농서의 남안, 천수, 안정 3군이 배반할때

빠르게 진격해서 이곳들을 바로 차지하지 않았고 둔영을 계속 세우면서 천천히 움직이며 꾸물거릴 뿐, 나가서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촉군의 주력이 가벼운 경무장 보병인데다가 촉나라 장수들의 군사적 재능이 위나라 장수들을 이길 수 있는 수준인지 의구심을 품어,

촉군이 위군을 이길수 있을지 걱정하고, 의심을 품고, 모험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거 모인 자들이 가까운 공을 탐하지 않아 진격하지 않았소.’라는 부분을 보면

비단 제갈량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라 촉군 전체에 약간 앞서서 공을 세우는걸 꺼렸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당시에 “”제갈량이 신속하게 진격해 농서를 장악했더라면 위나라는 결국 농서를 빼앗겼을 것이다””는 평가는

원준에게 질문한 사람이건 원준이건 부정하지 않으므로 이런 평가는 이미 당대에 널리 퍼진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보면 당시 제갈량은 굉장히 안전주의적으로 움직이다가 패착을 맞은 거라고도 볼 수 있다.

원자에서 원준은 제갈량의 실책을 옹호하기 위해서 이미 당시부터 만연했던 제갈량에 대한 비판을 일종의 허수아비로 내세우며 반박하는데,

원준이 말한 ‘천천히 진군했다.’,’제갈량의 선봉은 본대에서 불과 수리 떨어져 있었다’라는 부분은

허수아비의 어거지 비판이 아니라 제갈량을 옹호하는 원준 본인이 엄연한 사실이라고 반박하는 서술에서 나온 증언이다.

다시 말하자면 원준은 제갈량을 억지로 비판하기 위해서 이런 사실을 말한게 아니라

제갈량을 옹호하기 위해 실제 사실을 말한것이며, 따라서 그가 제갈량을 비하할 목적으로 이런 증언을 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신빙성을 가진다.””

제갈량 특유의 안전제일주의, 모든 것이 확실하고 안전할 때만 뭘 해보려고 하는 그런 성향이

오히려 독이 되어 제대로 패착이 된 것이 바로 이 첫번째 북벌입니다.

마속 탓 할거없이 그냥 제갈량 본인이 잘못한 겁니다.

2. 마속이 장합에게 포위되어 고립되어 있을 때,

제갈량의 본대는 마속이 고립된 곳으로부터 불과 수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도

마속을 제대로 구하지 않아 결국 선봉 마속이 그대로 격파되어 진격로가 막혀버렸다.

– 이것은 기존의 가정 위치가 아닌 진창 협로에 있는 천수시 맥적구 맥적진 가정촌이 실제 가정이라고 비정할 경우에

내려지는 결론입니다.

이 당시의 기록이 워낙 부실하여 왜 제갈량이 멀리 있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마속을 구원하지 않았고 격파되도록 내버려두었는지는 베일에 쌓여 있습니다만

여튼 분명한건 이것은 제갈량의 실책이라는 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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