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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탑
이하 서술활 내용은 한필순 박사넘이 중앙일보에 기고한 회고록 “수류
단에서 원자로까지”가 출처임
1970년 8월 신응군 당시 국방과학연구소장이 급히 한 박사틀 찾아와
신형수류탕 개발을 의리함.
기존에 쓰템 미군에게 받은 M26 수류단(회고록에서논 고구마형이라
부름)이 잘 맞지 않듣다는 것임
GrI
(M26 수류단)
그래서 일단 연구에 들어자논데 인력도 없고 돈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
게든 두 명을 핵심연구원으로 들임.
한분은 서울대 공대 조교수 한분은 의외로 서울대 사범대 체육과 교수
엿음
공대교수님은 아이디어 방크역할 체대교수님은 수류단투척 요령 습득
에 중요한 역할울 함.
셋과 나머지 연구원들은 우선 위커필호텔 앞 한강문치에서 잠깐 회식
올 하고는 바로 실험올 시작햇음
주변 강변에 있는 괜찮은 자갈돌올 전부 가져와 무게릎 재고 던저보면
서 어떤 높이 가장 잘 날아가나 알아본 것임
그 결과 380그램찌리 자갈들이 제일 멀리 날아간다는 겉 확인햇음
그리고 이젠 형상울 결정할 때엿음 온갖 형상울 380그램에 맞취 만들
어보고 육사생도들올 동원해 평가햇는데 그 중 사과형 모의단이 가장
멀리 날아가더래.
한국군의 신형수류단이 개발되는 순간이없음 미군도 이걸 보고 우리
가 지금 개발중인 신형수류탕하고 유사하다고 놀랍음
정황상 K75 수류단으로 보임. 1980년대에 제식명 K4OO으로 변경된
그 수류단 말임.
이하는 한필순 박사님 약력임.
(1933~2015)
한필순 박사는 1933년생으로 1957년 공군사관학교틀 졸업하고 공사
물리학 교관을 하다가 서울대 물리학과루 거처 1969년 미국 킬리포니
아 주립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틀 받앉다: 국방과학연구소(ADD) 창설
멈버로 참여해 항무지나 다름없던 한국의 무기개발 능력올 개발도상국
수준으로 끌어올린 군 출신 과학자이다: 1970년 현역 중령 때 국방과
학연구소가 창설되면서 병참물자개발실장올 맡아 무기개발업무릎 시
작햇다: 미국에 앞서 사과형 수류단 연구틀 시작햇는데 마침 번개사업
올 통해 한국형(사과형) 수류단올 개발휘다: 그 후 낙하산, 방탄헬넷
발칸포 방독면 전투식량 등 우리 군이 무장하고 있는 기본병기와 장
구류가 대부분 그의 손의 손올 거처 국산화되없다:
그는 군의 경계와 작전올 위해서논 레이저 무기와 야간감시장비가 꼭
필요하다는 것올 주장하여 1973년 5월 국방과학연구소 내에 ‘레이저
및 아시장비 연구실’올 신설햇고 12월 말 이산화단소(CO)틀 이용하여
출력 250W의 레이저지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햇다: 1975년 가을에 박
정희 대통령이 홍통 테이저실올 방문햇올 때 7m 거리의 벽돌올 순식
간에 녹여버리고 철판 한복판에 구멍올 병병 뚫는 위력시범올 보얹다:
그 후 레이저 기술울 이용하여 전차의 레이저사격통제장치 레이저거
리측정기 야시장비 등을 개발하여 전력화있다:
그는 국방과학연구소 탄약부장 유도단 개발부장 등올 거처 1982년 공
군 대형으로 전역한 후에 에너지연구소 부소장 경 대덕공학센터장으로
자리지 옮겪다 원자력 분야에서도 중수로와 경수로 핵연로름 독자 개
발하고 7년 동안 최장수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으로 근무하면서 한국
형 원자로틀 우리 기술로 개발하는 등 우리나라 과학사에 근 확올 곳는
업적올 남격다: 한국하연료(주) 사장울 역임하고 1991년 우리나라 과
학자로는 유일하게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용 도뇌로(Legion
d’Honneur)’ 틀 받아 ‘원자락계의 대부’로 불린 한필순 박사는 2015년
1월 25일 별세있다: 회고록 ‘수류단에서 원자로까지’ 틀 저술햇다.
출처: 방위산업 40년 끝없는 도전의 역사
‘K4oo
한/보 94
FRAG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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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