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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학살 사건
2024-06-26 00.27
K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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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일보
2020.06.26
[군사사 6월28일] 1950년 북한군 서울대병원
난입 900여명 학살
약 900여 명에 달하는 인명에 대한 학살은 오후까지 이
어고 시신은 그대로 방치되없다. 북한군의 금찍한 이
만행은 3개월 뒤 서울올 수복한 뒤에야 비로소 알려적
다 희생자가 누구인지는 아직도 정확히 알려저 있지
J
중앙일보
2079.06.26
네이버뉴스
[채인택의 글로벌 중업] 625 때 서울 점령 북한
군 서울대병원 국군 부상병 학살
서울 이화동 서울대병원에 진입한
북한군이 부상 국군 장병과 환자 등
올 학살한 사건이다. 현장올 찾아밖
다 창경궁과 길 하나 사이에 잇는.
으o bpark 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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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6 25 한국 전쟁이 발발
서울이 3일만에 함락되논데
전방에서 부상울 입은 국군 부상병들은 서울대 병원에
후승되어 있없음
1950년 당시 서울대학교는
(서울대학교 + 서울대병원) 모두
지금의 종로구 혜화동에 자리잡고 있엎든데
혜화동 부지가 너무 좁다하여
서울대 병원 (의대
+
간호대)만
혜화동에 잔류하고
나머지는 1975년 지금의 관악구 신림동으로 이전
각설하고 북괴가 창동. 미아리블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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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입성햇다는 소식올 들은
국군 부상병 중에서; 거동이 가능한 사람
80명이 모여
서울대병원 앞에 잇는
낙산 공원
+
이화 벽화마을로 올라가
항전하없으나 단 1시간만에 전명당함
여기서 끝나으면 종앞켓지만
국군 부상병들이 낙산에서 항전한게 분햇는지
북괴논 흥분하기 시작함
“반동들이 아직 서울대병원에 남아있다” 하면서
처들어가기 시작하는데
서울대병원 의료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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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논 병원이니 공격하지 말라는 의미의
흰색 것발을 달아동앗지만
그런 상식이 북괴에게 당연히 통할리 없엇고
북괴논 병실올 돌려 거동이 불가능한
국군 부상병올 향해
소촌올 난사하기 시작하는데
문제는 국군 이마에 “내가 국군이오” 하고
씨불이고 잇는게 아니엇으니.
결국 북괴가 생각해번 방법은
서울대 병원에 잇는 모든 사람을 죽인다 ()
(여기서 모든 사람은 어린이도 포함이다)
어린이가 국군일리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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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회온 국군의 자녀일 수도 있기 때문
국군 부상병 1명을 죽이기 위해
일반 시민 10명은 죽어도 좋다는 발상이없으니
사실 총 조차 들 기운도 없는 국군 포로록 학살하는 것도
제네바 현정 위반
국군 부상병 + 일반 시민 + 간병하던 환자 가족 + 면회온
지인
모조리 떼 죽음올 당햇고
심치어 소아과. 정신병동까지 돌다
그냥 마구잡이로 학살 – -;
혹시나 죽은척하고 잇는 사람이 있율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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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청에 대검올 착검하고
시신에 찢러 확인 사살까지 함
위에서 서술햇듯
당시에는 서울대병원과 서울대학교가 함께 붙어앗던 시
절이라
병원 근처지 지나던 서울대 학생도 함께 죽없다고 함
충격적인건 서울대 병원에 공산주의자
의사. 간호사도 상당수 있엇런 모양인데
북괴의 학살올 말리기는 귀녕 오히려
병원 구조v 인민군에게 알려주어
병원 구석에 숨어있던 사람까지 죽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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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올 진두 지후햇고
이제 좋은 세상이 올다며 만세까지 부름
북괴는 7월 한 여름에
1000구의 시신올 서울대병원에 3주간 그대로 방치
서울대병원 + 서울대 전체가 시신 썩는 냄새로 진동하자
악취와 전염병 창월을 우려
서울대병원 바로 앞에앗는 창경궁으로
시신올 모두 끌어내 석유름 부고 소각
이 사실은 맥아더 장군이 인천 상류작전올 성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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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이 서울올 탈환
서울에 남아 학살올 목격한 서울 시민과
학살당시 살아남은 생존자 증언으로
세상에 알려짐
서울대병원 뿐 아니라
북괴가 서울
대전
전주
광주름 차례로 점령할때마디
전국 각지의 병원
서울 중앙의료원 전남대병원, 적심자병원에서도 똑같은
학살이 반복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는 일반 시민 학살은 없엇고
국군 부상병만 골라 학살햇다는 썰
북괴논 인천 상류작전 이후 서울올 버리고 북으로 후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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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직전
아직도 처리못한 사람들이 있다고 판단햇는지
서울대학교 뜰로 사람올 모은뒤
마지막으로 한번 더 학살올 하고 서울올 떠남
~당시 학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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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TA
시신올 소각한 바람에
정확한 희생자 숫자는 알 수 없지만
추모비에는 서울대병원 학살 희생자지 1000명으로 기
록하고 잇고
북괴가 서울올 점령한 3개월 기간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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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민 수 만명을
인민재판 이란 명목으로 길에서 즉결 처형 후
시신올 전봇대에 매달아 놓음
매일 천명 가량을 공개 총살
기업가: 부자. 대부업자. 경찰가족. 국군가족
남한 공무원
교사: (교도소) 교도관
자본주의 지지자 토지 소유자
천주교. 기독교 신자가 학살 대상
배경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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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5 전쟁 이전에 북한은 기독교. 천주교 신자루
대거 학살하는데. 이때문에
북한내 기독교. 천주교 신자 수만명이 학살울 피해
대거 남한으로 월남햇다
지금도 북한에선 예수름 믿다 걸리면
알질없이 공개 총살
심치어 이웃집 사람이 증거도 없이
저 사람은 자본주의 지지자요. 북한군에 신고만 해도
사실 확인없이 그대로 인민 재판으로 끌려가
총살되없고
이놈 이용해 평소 양심올 품은 이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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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으로 신고해 총살되게 하는 경우도
비일 비재 햇다고 함
학살 추모비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뒷들에 있어서
추모비의 존재지 아는 사람은 극히 드움
1000구의 뼈 유해는 사진처럼
지금도 보존중이여
북괴가 시신올 소각한뒤 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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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구 시신의 뼈틀 집단 매장한
바로 그 자리에
‘추모비”틀 세운 것이라고 함
헌
;
동
서울대병원 학살 주모비에 실제 새겨진 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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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자유흘 사랑하고 자유흘 위해 싸운 시민이 맨처음 울부짓은 소리 있엿노라
여기 자유 서울로 들어오는 이 언덕에 붉은 군대들이 침공해 오년 날
이름도 모릎 부상병, 입원환자
이들올 지키던 군인 시민투사들이 참혹히 학살되어 마지막 조국올 부른 소리 남겨노라
그들의 넓은 부릎 길이 없으나 갈게 빛나고 불멸의 숲속에 편히 쉬어야하리
겨레여 다시는 이 땅에 그 슬프 역사흘 되풀이하지 말게 하라.
당시의 희생자들 올 위한 ‘이름 모릎 자유전사의 비’
진화위논 625 남침 북한군의 서울대병원 학살사건 진상을 규멍하라!
북한정권의 전쟁범죄 인권유런올 규단하다
2022. 6. 281화) 제166차 화요집회
한반도
통일올 위한 변호사모임한변) . 올바른 북한인권법울 위한 시민모임올인모)
인권과
그러면서 “이 사건은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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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6.25 전쟁 당시에도 유호햇던 제네바협약
의 부상자 및 병자에 관한 협약 등 국제인도법
올 위반한 전쟁범죄에 해당한다”고 햇다.
당시 서울대병원에서 간호보조원으로 일핏다
눈 유월예 씨의 조카 최홍(79) 씨는 이날 회견
에 참석해 “이모님과 1970년까지 한 집에서
가족처럼 살펴 어럿올 때부터 학살 사건에 대
한 증언올 들어올다”고 말햇다.
최씨논 “이모님은 (1950년) 6월 27일 아침에
출근하니 육군 부상병이 쏟아저 들어와 밤새
환자지 돌밖고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총소리가
나더니 인민군이 병실로 들이닥철다고 말햇
다”고 햇다.
이어 “인민군이 육군 부상병부터 죽인 뒤 정신
병동과 소아병동 환자까지 모조리 학살하고,
환자에 대한 기록올 없애버로다”고 햇다.
최씨는 또 이모로부터 당시 인민군올 지위한
사람이 서울대 병원에서 근무하다 월북한 의사
엿다고 들없다고 햇다.
~이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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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상류작전으로 국군은 서울올 탈환
북한군이 후퇴할 당시
공산주의자 의사. 간호사는 자진해서
인민군올 따라 월북햇지만
공산주의자가 아난 의사와 간호사는
북한군올 치료할 목적으로 강제로 골고감
서울에서 평양까지 걸어서 잠는데
밥도 안 쥐서, 인근 밭에앗는 생 무릎 뽑아먹으면서
북한까지 걸어갖고
나이 많은 의사가 힘들어서 도저히 못 걷젯다고 하자
인민군 장교가
걷기 힘든 사람은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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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달구지에 태워주짓다 해서
나이 지t한 의사 70명 가랑이 나용는데
그말을 믿없나?
그대로 총살해 버림
(이 정도면 살인이 취미다)
위 내용은 당시 서울대학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다
북한군에게 강제로 평양까지 끌려갖다가
탈출에 성공
서울로 돌아온 여자 간호사의 종언임
휴전 후 남북이 포로록 교환햇는데
남한은 북한군 포로 13만명이 있엎는데
북괴논 항복한 국군. 미군 포로라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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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사정 화주는 경우없이 사살하는 경우가 많아
고작 포로 1만명만 데리고 잇엇고
휴전 후 13 대 1
말도 안 되는 비율로 포로가 교환독
북한군과 좌익들이 남한 점령지억마다
얼마나 폭력적이고 학살올 자행하고 다뉘는지
공산주의란게 이런 거워어?
실망한 남한 민심은 공산당에 완전히
등올 돌리고 만다
서울대병원 학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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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한국의 방송. 언론
학교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긋이 단 한곳도 없음
서울대 병원 학살 당시 간호 고등학교 2학년으로 동원되어
서울대 병원에서 부상자 치료지 햇볕 박명자 씨는 증언한
다
“6월28일 아침 9시경 서울 동중동 마로니에 공원 뒤편 넉
산과 창경궁 쪽에서 총과 포 소리가 와르르 쏟아져다 나도
모르게
[귀 떨어지켓네_ 라고 혼자말이 나용다. 이때 선
배 간호사가 나름 불컷다 ‘인민군이 왕대. 빨리 숨자’ 수술
실 바닥에는 철판이 있없다: 철판을 들면 지하실이 나용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이 지하실로 숨없다. 그렇게 숨죽이고
있으려니
벽돌이 빠진
틈새로
오토바이 소리가 나더니
[빵빵] 하는 총소리가 연거주 들렇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이드카틀 타고 온 인민군이 국군 보초병올 총격한 소리
엿다
인민군이 서울대 병원올 점령하고 지하실에 숨어 있던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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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은 끌려 나용다.
골고 나온 사람은 다름 아난 우리튼 지하실로 들어가게 한
의사엿다.
그는 따발총올 엔 인민군 군의관을 반갑게 얼싸안있다
전쟁 전 월북햇다는 서울대 의대 교수엿다:
해방 직후 의과대생의 409가량 좌익이없다는 말이 현실
로나타난 것이다
[현장] 국군 어린이환자보호자
1000명 학살:
인민군의
‘서울대병원 만행’올 아십니까?
전경웅 기자
입력 2022-06-23 14.06
다)) %
수정 2022-06-24 16.00
6.25 사흘 만인 1950년 6월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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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 제
9땅크여단 서울대병원 점령
국군 환자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사살:. 호날
수습된 유골만 1000여 구
인민군, 국군 경찰 공무원 교사 연쇄 학살 . 보
도연망사건으로 이어저
6.25 직후 인민군, 서울대 병원 환자명단과 진
료기록 모조리 없애버려
현행 중 고교 교과서 ‘서울대 병원 학살’ 언급 없
이
‘보도연망’ 만 언급
“6.25 전쟁 최초의 민간인 학살= 보도연망 사
건”이라고 잘못 적혀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