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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중의 상거지
해골들의 행진
<국민방위>-학실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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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니
약 70Lm
영하의 날씨에
국민방위군이
이불대신 덮/던 것들
(그것도 2인1조)
세로
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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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2움
소금국
‘건다 없유
국민방위근에게 제공된
하루치 식량
당시 전쟁포로들에게 지급되없던
하루치 식량이 5혼5작
이유 : 당초 4흡올 배정햇으나
중간에서 다 떼먹없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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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디기 옷
1월의 복장
홀바지에 저고리차림
12월 유례없는 흑하이없지만 정부는
이들올 위한 옷값도 배정하지 않앉다:
이유 : “현금올 주더라도 방한복 50만벌올
구할길이 없는데 예산은 배정해서
무엇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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뻗빵이
Republic of Korea MND
Detense Media Ag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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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기상 하루종일 행군
서울-김해-진주-마산 등등
도착하면 집결지에 수용능력이 없다며
다른 교육대로 가라고함
이와중에 교육대 간부들은 수용한
것으로 서류틀 꾸며 예산 빼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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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명
~8만명
총 한방속파보지 못하고 굶어주고,
얼어주은 장병들의 수!
(그것도 정확히 알수는 없다)
미국 통계에 따르면 6.25 전쟁 중
한국군 전사자는 14만 900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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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직어 물어보자
만약 전쟁 중
불과 100여일 사이에
적군 5만 명 이상블
섬멸하는 전과루
올려다면?
반대로 5만명의 아군들
잃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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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방위군 사건의 개요
정부는 1950년 11월 20일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으로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만17세에서
40세
미만의
장정들올 제2국민병으로 편성하없다
1950년 12월 21일 국민방위군 설치법이 공포되어 서울에
모여든 방위군 숫자가 50만여 명에 이르렉으나 중국군의
공세가 거세지자 정부논 방위군 장병들올 대구와 부산
등으로 이동할 것올 지시한다: 흑한 속에서 국민방위군은
걸어서 이동해야 햇는데 고위 장고들의 예산 차복으로
이들에계는
제대로
된 숙식과
겨울피복
군복 등이
지급되지 않있다: 이 때문에 불과 100여 일 사이에 50만
명의 방위군 장병 중 약 5만 명이 사망하다:
동아일보
소집원
장정굽이
숨변급
기다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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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방위군 사건은 국가권력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또 다른 학살이없다 이 사건은
다른 학살사건처럼 방위군 병사들올 총올
들고 죽이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보급품과 식량올 지급하지 않고 굉령해
수만명올 굶어죽고 얼어주고 영양실조로
병들어 죽게 한 사실상의 학살사건이다”
한홍구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에서논 이사건들
학살분야의 반헌법 사건으로 분류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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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지에서 죽어간
국민방위군 병사들의 시신은
과연 어떻게 처리되없올까?
1951년 3월 무렵 국회의원 몇명이 국민방위군 사건의
진상에 대해 조사흘 하러 나앉다가 경남 마산 교외의
밭두렇에서 새끼줄에 목이 매인 국민방위군 병사들의
시체률
발견햇다:
병사들의
시체는
그대로
방치되어
있엿는데,
조사결과 기간
사병들이 병사들의
시체에
새끼줄로 목을 매어 골고 나오다가 귀찮은 나머지 그대로
발두렇에 버린 것으로 밝혀젓다:
도현진 저; 국가의 배신 중
‘풀리처상 종군작가 맥스 데스포의 ‘눈 무덤올 헤치고 나온 손끝’
(한국군 전사자일것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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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포로도 아난 동포록
이렇게 처참하게 학대할 수 있올까 싶없다:
6.25전쟁의 죄악사에서 으뜯가는 인간
말살 행위엿다. 이승만 정권과 그 지배적
인간들 그 체제 그 이념의 적나라한
증거없다: 얼마나 많은 아버지가 형제와
오빠가 아들이 죽어자논지 단테의
연욕과 불교의 지으도 그럴 수 없없다:
단테나 석가나 예수가 한국의 1951년
겨울의 참상을 보앗더라면 그들의 지옥올
차라리 천국이라고 수정햇올지도 모릎
일이없다”
# 리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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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군인들에게
가야할 것은?
국회 조사위원회의 보고에 의하면 1950년 12월 17일부터
1951년 3월 31일까지
유령인구름 조작하여 착복한
것이 현금 23억 원() 쌀 5만 2천 섬이나
되없다고 한다:
3개월 동안 55억이라는 막대한 금액올 방위군 고위
간부층 이 착복한 것이다
국민방위군의 재정올 실질적으로 총관한 부사령관
운의현은 사무실 옆 부속실에 돈올 산디미처럼 쌓아
농고 기생들에게 집히는 대로 돈올 뿌리고 다h다 그가
100여일 동안에 기밀비 명목으로 손 돈이 3억원. 국가
기관인 감찰위원회 (지금의 감사원)의 1년 예산이 3천
만원가량 월 때얹다.
100
9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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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방위군사건 관련 1차 반헌법
행위 집중검로 대상자 명단(7명)
신성모(당시 직책: 국방장관)
협의 내용 : 국민방위군 동원 책임, 은페 처벌 X
이선근(국방부 정혼국장; 국민방위군 사건 재판장)
국민방위군 고문 역할 사건 후 재판장으로 은페 축소
문의헌
킬문근
소내;마
국민방위군의 주억이된 정년방위대 간부들
김운근 (국민방위군 사령관) 사형
‘량의 군수품 기타 중요 물자의 강취 갈취; 절취 등
약달 및 불법처분 의 죄률 범한 자
운의현(국민방위군 부사령관) 사형 – 위와 같은 협의
강석한(국민방위군 재무실장) 사형-위와 같은 형의
박창원(국민방위군 조달과장) 사형-위와 같은 형의
박기한(국민방위군 보급과장) 사형-위와 같은 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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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왼쪽 김운근 (국민방위군 사령관) 국민방위군에 훈시중인 이승만
김문근
대한청년단 3대 단장; 국방장관 신성모의 사위,
이승만의 양아들이라 불질정도로 총애틀 입어
민간인 신분에서 하루아침에 별올 달있다:
국민방위군의 운영올 일종의 사설단체라고활 수 있는
대한청년단에게 맡겨젓다.
일제가 만튼 청년단 조직이 서북청년단 등의 우의반공청년단으로
이어적고 그룹 통합한 것이 대한청년단이다
이승만 정권 수립의 행동대 역할올 해온 대한청년단 간부들이
전쟁기간 중국가권력의 비호 아래 예산을 굉령하고 비리블 저절러
수십만 군인을 아사시권 사건이바로 국민방위군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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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년 8월 12일 대구교외 야산에서 집행문 국민방위군 사건주범들의 처형식 장면 @한거레
표
당시 국민들의 여론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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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일부 책임자들이
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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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살되기는 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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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올 보정 쩐임자E관
솜직 봄
#출#
벌받지 양있다
말
표
주문
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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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사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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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
귀환장정 8할이 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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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책임자는 할복사죄하라”
둘
h다
돕다
방위군사건 국회중간보고내용
오
뼈
훈표
돌
혀
뭐
값다
이게 한국전쟁 중에 벌어진 사건.